
♧ 괭이밥 - 이동훈
안도현 시인은 고향으로 돌아와 「풀 뽑는 사람」이 되었답니다. 애기땅빈대, 쇠무릎, 바랭이, 괭이밥을 호명하고 그들의 재주를 말하더니, 이를 어쩝니까! 연탄재 시인답지 않게 풀들을 인정사정 없이 뽑고 만답니다. 서른다섯 전에 이름을 불러주지 못했다고 자책했던 애기똥풀, 눈물지으며 바라보는 이가 없었다면 그게 쓸쓸한 일이라고 말했던 개망초까지 뽑아야 할 풀 명단에 포함되어 있으니 좀 놀랍긴 합니다. 시인이 작물을 바라는 농부가 되려는 것일 순 있어도 다정多情이 소정少情이 된 것은 아닐 터인데 괜히 풀도 아니면서 서운해집니다. 개중에 괭이밥은 집 화분에 이십 년째 죽치고 앉은 인연이니 도의적으로 괭이밥 구명에 나서야 될 판입니다.
괭이밥은 풀이 고양이 소화제 역할을 해서 얻은 이름인 줄 시인은 압니다. 『한국식물생태보감』을 쓴 김종원 선생도 옛 문헌까지 고증해서 괭이밥이 고양이와 연관이 있을 걸로 추정합니다만 왠지 미덥지 않습니다. 풀 뜯는 고양이가 있긴 해도 괭이밥이 늘 있지도 않은 데다 꼭 괭이밥이어야 할 이유도 없지 않나 싶은 것입니다. 해열과 염증 해소에 약효가 있다는 괭이밥 이파리는 보면 볼수록 어찌 그리 예쁠까요? 나란히 앉은 하트 세 장도 선물 같은데 꽃대에 횡금색 불을 켤 것 같으면 고것이 작아서 더 장하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괭이밥 이름이 고양이와 별개라면 그 뜻이 어디에서 왔을까 궁리한 지 여러 달 지났습니다. 농부의 손에 매일매일 노는 농기구인 호미, 괭이가 우선 생각납니다. 자루가 긴 괭이는 무른 땅을 파고 흙을 고르는 데 적격입니다. 그런데 괭이밥을 암만 봐도 괭이와 닮은 구석을 찾기 어려우니 잘못 짚은 건가 싶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우연찮게 권정생 동화 『오소리네집 꽃밭』을 보다가 그간의 의혹이 한순간에 걷히어 저 혼자 좋아라, 소리도 냈습니다. 동화의 주인공은 오소리 부부입니다. 오소리가 사람 학교의 꽃을 보고 와서 잿골 자기 집도 꽃밭으로 꾸미고 싶었답니다. 오소리 부부가 괭이 들고 꽃 가꿀 밭을 일구는데 이미 패랭이꽃, 잔대꽃, 용담꽃, 도라지꽃으로 둘러싸인 것을 알고는 부부가 괭이를 놓고 씩 웃고 만다는 얘깁니다. 여기서 눈치챘으려나요? 패랭이도 잔대도 용담도 도라지도 하마터면 괭이 앞에 밥이 될 뻔했다는 것을요.
말하자면, 괭이 앞의 밥 신세라는 얄궂은 운명이 괭이밥 이름의 정체입니다. 이렇게 선명한 것을 아니라고 얘기하는 당신도 당연히 존중합니다.
이십 년 지기인 화분 괭이밥을 다시 봅니다. 제 집도 없이 뿌리를 잘도 내리는 성미에 세를 불리는 데도 특기가 있으니 작물 재배를 위해선 괭이의 수고를 빌려야 하는 사정을 이해하게 됩니다. 안도현 시인도 어쩔 수 없는 선택 앞에 풀을 애도하고 그 이름과 쓰임을 밝혀 최소한의 우정을 표했다고 봅니다. 황대권 선생도 『야생초 편지』에서 괭이밥이 시큼한 맛이지만 다른 풀과 섞어 먹으면 입맛을 돋우게 된다고 했습니다. 생김새 비슷한 토끼풀과 견주어 괭이밥 자체에 거름 성분이 없다고들 합니다만 이 또한 다른 풀과 흙과 공기가 섞이면 거름 되는 삶에도 결코 빠지지 않을 겁니다.
보시다시피, 괭이밥을 편들어주고 싶은 마음에 권정생 동화가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사실입니다. 『강아지똥』에서 거름 되는 삶이 가장 아름답다고 해준 것에 이끌려 토끼풀과 괭이밥을 비교하는 실례도 했습니다. 조탑동 권정생 집 마당에 토끼풀이 자란다는 글을 어디서 읽은 기억이 납니다. 오두막 한구석 아니면 빌뱅이 언덕 아래 어딘가엔 분명 괭이밥 한 줌도 자라고 있을 겁니다. 혹여 괭이밥을 발견하시거든, 고양이 밥을 남겨두는 집사의 마음으로 한 번쯤은 괭이밥만을 위해 주시기를요.

♧ 잊기 대신 덮기 – 이지영
발치에 머물던
하루의 볕이 떠나고
서로를 위하던 시간
포개어 잠들면
하나씩 꺼내 읽다
지우는 마음은
잊겠다는 진심
진심 담은 거짓
이제는
잊기 대신 덮기
아무도 모르면
아무 일도 없는 거니까

♧ 괭이밥 – 여연
-삶의 접힘과 펼침
노란 별 다섯 개가 땅 위에 떨어진 듯
발밑에서 빛나고
하트 닮은 세 잎이 별을 받쳐 주려는 듯
몸을 일으킨다
빛이 손을 내밀면 몸을 열고
걸음을 거두면 눈을 감는다
꼬투리는 말 없는 폭발을 품고
젤리 같은 알 속에 검붉은 씨앗을 숨긴다
건드리는 손끝마다 사방으로 튀는 순간들
누구도 예고하지 못한 작은 우주의 탄생
저녁 공기가 잎을 재촉하면
꼬투리는 씨앗을 채우고
스치는 손길에 터져 나간다
씨앗들은 제 자리를 찾아 흩어지고
빈자리엔 다시 하트가 돋는다
길가의 그늘에서 여러 해를 견디려면
빛을 기억하기 어둠을 받아들이기
노란 꽃잎이 지고 나면 땅은 더욱 단단해진다

♧ 들썩, 꿈틀 – 이규활
비 그친 뒤 길가 풀밭이 들썩거린다
몸을 접은 달맞이꽃이 빗물을 머금은 채
저녁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비에 취해 발그레한 쇠비름 줄기를 오르는
달팽이 하나
더듬이를 내밀고 안부를 묻는다
벽 그림 위로
담쟁이가 손을 뻗어 그늘을 덧칠해 넣고
까마귀 몇 마리가 전깃줄 악보를 밟으며
검은 목소리를 꺼내 놓는다
여름의 찌꺼기를 배출하던 아파트 실외기 문이
하나둘 닫히기 시작하고
가렸던 커튼과 블라인드를 열어
밖을 들이는 집들이 늘어난다
지친 태양이 기울자 온 동네가 꿈틀거린다
*월간 『우리詩』 2026년 9월호(통권 459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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