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밀 이야기
‘비밀’은 15번째 시집의 제호다
아래 삽화는 16번째 시집 『독종』(2012, 북인)에 들어 있는 詩다
『비밀』(2010, 우리글)을 낼 때의 일화다
세상은 불통이라서 살맛이 난다
이번 시집 제목이 무엇입니까?
『비밀』입니다!
시집 제목이 뭐냐구요?
‘비밀’이라고요.
제목이 뭐냐구?
‘비밀’이라구!
젠장맞을, 제목이 뭐냐니까?
나 원 참 ‘비밀’이라니까.
-「불통」전문
이 시로 세상 사람들은 웃었다
그게 내 시 인생의 성공이었다
이제 세상에 비밀은 없지만
그래도 세상은 여전히 불통이다
♧ 겹 – 강동수
꽃들이 도열해 있는 화원을 지나는 날은
햇살이 좋은 날이다
꽃의 유혹에 잠시 눈길을 줄 때면
몇 겹의 화려함으로 자태를 뽐내는 꽃들
겹채송화 겹무궁화
혼자 있지 않다는 말
겹이라는 말 참 좋다
한때 한 이불 속에서 발을 포개고 잠들던
우리 가족 같은
정겨운 말
겹
♧ 십이월 – 김석규
새해의 달력을 말아 쥐고 가는 사람
마른 어깨가 유독 시려 보인다
그래도 날 저물면 찾아들 집이 있어
설멍설멍 따라나서는 그림자
하필이면 저만치에 늑장을 부리고 섰는
한 해의 휘우뜸해진 저물녘을
바로 코앞에다 가까운 길을 두고도
일부러 먼 길을 잡아 따라가는 사람
♧ 얼굴 없는 사람 - 김정식
얼굴 없는 사람이 걸어갑니다.
얼굴을 뭉개고 찌그러뜨리는
현대 예술가 베이컨의 후손인가 봐요.
군집 속에서 군중 속에서 더욱
얼굴을 감추죠.
뉴스에, 다음에, 네이버에, 유튜브에,
익명의 댓글 속에 얼굴을 숨기죠.
그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라서야
개처럼 먹다 남은
밥통을 엎지르고 핥던!
혀의 꼬리를 내리죠.
창조를 위한 접속인가요?
어린 시절의 억압의 트라우마인가요
시대에 대한 불안의 트라우마인가요
심리적 리얼리티인가요
사회적 리얼리티인가요
당신의 입과 치아의 근육 속
정형화된 글씨의 외침과 고함,
저는 그런 접속이 푸줏간에 걸린
오독으로 획일화되지 않을까
두려워요.
♧ 제비꽃 – 도경희
너 하나로 저문 날
제 살 허물어 반달 같은
저 낡은 간이역
허기가 잘박거린다
무명베 허리 곱던 아낙이
두 손 오돔아
호오〜 상처에 입김을 불어준다
주검을 부활시키는 예수처럼
눈 감아 묵주알 헤며 신비를 심던 대지가
심장을 열어보이자
핏줄에 흘러드는
두메 제비꽃
고운 옷 얇게 걸친
산홍의 비천무 같이
어린 햇귀 어깨 가벼워서
영혼이 돋는다
*월간 『우리詩』 1월호(통권427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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