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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제주작가' 2023 겨울호의 시(4)

by 김창집1 2024. 1. 27.

 

 

Pretend 김혜연

 

 

   약지손가락이 종아리를 예언하고 날개뼈가 척추를 예언하는 밤에도 무대는 뜨거워야 합니다 몸은 활이 되고 펜이 되면서도 두 개의 눈은 나의 자치구라서 종종 눈물이 고입니다 춤에는 빛깔이 말이 관계성이 없고 춤에는 사라진 시간이 설득이 비밀이 묻어납니다 나는 아빠 어깨 위에 앉아 있고 엄마는 아빠와 어깨동무를 하고 있고 스웨터는 알록달록하고 아빠의 정강이까지 올라온 그 언덕의 눈은 폭신하게 하얬지요 흘리다 만 피는 미제로 남아 훌쩍훌쩍 새벽을 흘립니다

 

 

 

 

제식훈련 양동림

 

 

오른발 내디딜 땐

왼팔이 앞으로 나가야 한단다

왼발!

왼발!

구령에 따라 왼발을 내디딜 땐

오른팔이 나가야 하는 거야

왼발! 구령에도 오른발이 나가고

덩달아 오른팔 내 뻗으면

고문관이 되는 거야

균형이 흐트러져 엉거주춤 엉거주춤

주변의 웃음거리가 되는 거야

왼발!

왼발!

그령에 맞춰 얼른 보조를 맞추고

손발을 맞추어

오른발 왼팔

왼발 오른팔

사이좋게 보조를 맞추어야

나라가 바로 서는 거야

 

 

 

 

시오름의 봄 오광석

 

 

한겨울 땅 속 깊은 자리

응어리진 혈()

실금 같은 햇살에 녹아 올라온다

 

붉은 동백으로 핀다

 

 

 

 

현택훈

 

 

힘껏은 복삭

복시락은 복스럽다

 

동문시장에 가면

사람들이 복작복작

 

물에 빠지면 복 먹고

내 마음 몰라줄 땐

복장터지네

 

강셍이 털이 복슬복슬

좋아하는 사람 앞에선

복삭거리지

 

청소를 하면 먼지가 복삭복삭 나고

설거지 할 땐 그릇을 복복 닦지

 

복숭아는 복송개

복사막은 복 불러들이는 사마귀

 

예덕나무는 복달낭

복젱이는 복어

 

 

 

 

북비공(北扉公)에게 - 김영란

 

 

  믿었던 것들이 죄다 흔들리다 무너졌지

  슬픔은 뿌리가 길어 끝을 알 수 없는 걸까 슬픔이 슬픔을 덮으며 서로를 끌안았지 버려지기 전에 버리는 법 배워야 하나 하늘도 어린 아들도 끝내 보지 못하신 가련코 가련하여라 아, 사도세자 나의 아버지 그대 북비공이여 아무도 들이지 말라는 왕명 앞에 어찌 날 업고 들어갔소 뒤주 뚜껑 돌로 누르란 왕명을 어찌 거역하였소 북비공의 등에 업혀 간신히 영결(永訣)은 하였으나 목숨 걸고 용기 내준 그대를 난 못 지켰소 북쪽으로 문을 내 세상과 등진 그대 마음의 빚으로 남은 세월 고맙고 미안하오 그대와 나 아름다운 인연 손자로 이어지나 그댈 보듯 반갑고 기뻐 오랜만에 울어보네

  다시는 높은 가지에 홀로 울지 않음세

 

   

      *제주작가회의 간 제주작가2023년 겨울호(통권83)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