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들의 텃밭
못 잊을 그리움 하나
수평선에 걸어두고
풍경소리 풀어헤친 전설의 향기는
대지의 영원한 사랑이에요
저 멀리 바다를 건너는
달그림자 좀 보세요
줘도 다 줘도 모자라서
밤낮없이 바다를 흔들고
해그므니소* 빗방울 돌아 앉히며
아낌없이 주기만 하는 그리운 나라에서
사랑을 노래해요
땀꽃 소금꽃
송이송이 영그는
우리 꽃님 할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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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그므니소 : 해가 들지 않아 검게 보이는 바위 웅덩이
♧ 거친오름 뫼제비꽃
언 땅을 깨고 일어서기 위해
풀들은 저마다의 심장을 두드리고
손을 뻗는 뿌리의 힘으로 꽃피는 줄을
천 갈래 만 갈래의 서리 박힌 살은
시린 이를 부딪치는
만삭의 대지를 씻으며
빌레왓 곶자왈을 짐승처럼 기어 나온 순애 씨!
당신을 공비라 하던가요
1956년 교래 어디서 잡혀온 다섯 사내들 틈에서
스물두 살 앳된 처녀를 취조하던 한 경사,
그녀의 흔들리는 마음 깊이에서
폭도와 경찰의 동거 살이 2년여
그 인연의 살핌도 갸륵하여이다
봄이 오는 산빛처럼
내 연모의 땅 거친오름 아래
사월 바람도 몸을 풀고
뫼제비 분홍 꽃잎으로
다문다문 내려서고 있다
♧ 꾸지뽕나무
여봐란 듯 살고 싶어서가 아니다
온 몸에 두드러기 꿀렁꿀렁 일어나
물기 없는 이파리 푸석거려가며
샛노란 그리움을 뿌리 가득 칠해야 했다
몸에 좋다 약이 된다
너도나도 덤벼들기만 했다
하다하다 충 먹은 양 우글락부글락
못 생긴 열매 하나까지도
남아나지를 못하겠다
아서라,
선무당 사람 잡는 풍얼이
귀 쫑긋 눈 휘둥그레지는 칭원한 사람들아
내 뭔들 못 주랴
굳이면 어떻고 꾸지면 어떠냐
쿳가시낭 이름도 있으니
이 몸 아껴 무엇에 쓰리
어울렁더울렁 같이 사는 세상
까짓거,
비우면 채우고 채워지면 넘치는 법
모진 비바람도 시간의 경계를 허물고
모든 버거운 길 위에서 우리
뜨겁고 서러운 시절들을 위해 기도하자
네 몸의 가시가 슬픔의 강물이라는 것을
알기까지
*김순남 시집 『내 생애 아름다운 인연』 (도서출판 각 시선 051, 2023)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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