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 - 나병춘
왜 저러코롬 단정한가
새의 몸짓과 노래는
더하거나 뺄 것이
눈곱만큼도 없다네
♧ 밤에 보이는 것이 있다 – 목경희
하늘의 별들이 숨죽이고
도시의 불빛을 잠재우는 비밀의 시간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허상일 뿐
눈을 감아야 떠오르는
진실의 실체가 있다
미완성의 조각이 맞춰지는 어둠의 시간
희열의 호흡이 살아나고
허무한 상실은 가라앉는 밤의 시간
사람들이 꿈을 꾸고
마음속에 희망을 품는 그 시간
하얀 치마 나풀나풀 춤추고
헝클어진 긴 머릿결 날리며
신발을 벗어버리고, 가면도 던져 버리고
맨발의 고독한 몸짓으로 살아있는 자유를 만난다
눈을 감으면 보이는 것이 있다
♧ 내 마음의 질그릇 – 박동남
이끼 낀 감나무 아래
안정감을 주는 배의 무게로
비바람 속도를 익혔다
속 곪을 일 없다
무엇을 채워도 변질을 다 먹어 치워서
어머니 며느리 며느리의 며느리 손맛을 잘 품어 두었다
길들인 농익은 깊은 맛이다
채우는 물속에 내가 흔들린다
탐심 정욕 분노가 가득한 나
약자를 밟고 내 끼니를 해결하던
유익과 안일만 추구했던 내 마음의 그릇
항아리의 속삭임이 내 귀에 들린다
좋은 것으로 채워
나를 닮아라
응〜
♧ 아이야 – 배한조
아이야
어둠이 짙다고
울지 마라.
어두울수록
별빛은
더욱 빛나더라.
아침은
더욱 찬란하더라.
♧ 안개 바다 – 백수인
새벽 바다는 온통 혼돈의 빛깔이었죠 누군가 흐릿한 실루엣 속에서 무슨 일인가를 벌이고 있었어요 세상의 모든 형상들이 줄지어 물속으로 가라앉았고 애절한 소리들이 서로 부딪치며 파도의 그림자들을 만들어 내고 있었어요
그 푸르던 하늘은 이미 수면 안으로 스며들어 그 경계조차 모호하게 출렁였고, 그 속에서 수많은 비밀들이 벌 떼처럼 잉잉거렸지요 세상의 밝은 빛은 흐릿한 소용돌이 속으로 점점 허물어지고 뜻을 잃은 언어들만 굳세게 일어나고 있었어요
그때 중저음 뱃고동 소리가 울리며 검은 배 한 척이 느릿느릿 내 가슴 속으로 들어오고 있었어요 그게 안개를 걷어 내는 한 줄기 빛이었다는 걸 나중에야 깨달았지요
*월간 『우리詩』 2024년 2월호(통권 428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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