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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김순남 시집 '내 생애 아름다운 인연'의 시(7)

by 김창집1 2024. 3. 21.

 

 

빈집

 

 

, 저것들이?

나 집에 가고 싶다 할 때는 꿈쩍도 않더니만

 

헛기침 칵칵 뱉던 하르방 먼저 가고

딸 아들 다섯 남매 실하게 커서

제 앞가림은 하고들 살아주니 의기양양하여

넓은 집 너른 텃밭 거느리고

두 팔 휘저으며 골목이 좁다 할 때는

세상 다 가진 것 같았지

 

구십 다 된 노인이라지만 주사 몇 대 맞으면

집에 갈 줄 알았다네

 

요양원 창문 너머 달은 밝아

안거리는 쥐며느리 득실

밖거리는 거미줄 이레착 저레착

살뜰히 다듬어 놓은 마당에는

살갈퀴 소리쟁이, 지붕 위엔 방가지똥까지

온갖 잡풀이 내 세상이여 차지하고 들어

아귀다툼이 따로 없구나

 

이승을 비우고 버리는 일보다 더

무엇을 버려야 허망이라는 말을 껴안을 수 있을까

비움이 부자라는 옛말이

슬프다

나의 빈집은

쓸쓸한 틈이 없네

 

 

 

 

야고

 

 

기대지 않고 사는 삶이

어디 있으랴

 

끼리끼리 내어주고 기대며

생의 절정이란 서로를 위해

웃는 일

 

빈자의 무욕은 아름다워서

외로움도 발그레 꽃으로 핀다네

 

 

 

 

일강정 푸른 물아

 

 

바람 따라 넘실대는

이랑과 고랑을 넘고 넘어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리에

몸을 푼

,

 

보말 오분자기 소꿉놀이 뒤로

붉은발말똥게 숨바꼭질 여미고

해 얹고 달 띄운

어머니의 바다

 

눈부신 것들 속에 깃든

맨살의 눈물겨움이

아리게 흔들리고 있는 바다여

 

철없이 피어난 꽃잎에

실핏줄 터지는 벌노랑이야

칼바람 안고 선

솟대야

 

내 푸른 고집이

진압되어야할 무리라는 구나

강정천 맑은 물에

산란을 품어온 은어 떼

진압 대상이라는구나

진압해야만 한다는구나

 

 

        *김순남 시집 내 생애 아름다운 인연(도서출판 각 시선 051, 2023)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