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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문경수 시집 '틀림없는 내가 될 때까지'의 시(5)

by 김창집1 2024. 3. 20.

 

 

하트세이버

    -준환에게

 

 

죽고 싶다며 눈감는 사람의

가슴을 함부로 짓이겨도 되는 걸까

 

신고를 받고 출동한 그는

잠긴 문 문 너머를 상상하는 습관이 생겼다고

 

까만 동공에 심어 둔 투시경이

두꺼운 갑종방화문을 뚫는다

 

젖은 옷이 담긴 세탁기 옆

쏟아진 수면제, 삐뚠 글씨로 적은 비문 가득한 유서, 몇 통의 부재 중 전화……

 

갈빗대가 으스러지도록

식어가는 사람을 누르며 무표정으로

스스로를 향해

우리의 인생은 왜, ! 이토록 허무한 겁니까!”

 

다려진 셔츠를 붙들고

단추가 뜯어지도록 외치지 않으면

 

심장이 멈출까

덜컥 대답을 들어버릴까

 

손발 구르는 동안

검은 비닐봉지 밖으로 삐져나온

짓무른 귤 두 개

푸른곰팡이 슬고 있다

 

빨간 십자가

문을 열고 사라진 사람은

소식이 없다

 

그나저나 이 사람 그때 밥은 먹었으려나

 

 

 

 

카운트다운

 

 

10

 

카운터펀치 얻어맞고 튀어 오른 저녁 하늘의 마우스피스가 정지 화면으로 보이는 순간

 

 

9

 

첨탑에선 종소리 울리고 전신주엔 새 한 마리 앉는다 무릎 짚고 다시 일어서라 부추기면

 

 

8

 

흰 수건을 만지작거리던 지난날 어수룩한 내가 죽도록 미워진다

 

 

7

 

찢어지고 부어오른 얼굴, 외눈으로 겨우 보이는 것은

 

 

6

 

늦은 오후께 반투명 통유리를 통해서만 한두 뼘쯤 빛이 드는 방

가느다란 로프를 붙든 채 얼굴을 닦는 벌레 같은 사람아

 

 

5

 

여기요, 여기요, 그래요, 손 흔들고 있는 여기요

 

 

4

 

얻어맞아서가 아니라, 이를 악물어서 아픈 거라며

한번 문 건 놓지 않는 핏불테리어처럼 짖어도

 

 

3

 

얼굴은 사라지지 않고 기어코

닳고 해지기만을 거듭하다 멍들어 간다

 

 

2

 

뭉게구름 한 뭉치 뜯어다 피 묻은 입가를 닦아 줘서 고맙습니다

 

 

1

 

나 잘 살고 있는 거 맞죠?

병든 개처럼 운다

 

 

 

 

세화

 

 

무너진 콘크리트 더미를 헤쳐 붉은 새가 된 사람을 온몸으로 감싸며

 

일터에서 다치지 말자 죽지 말자 살아야지

시시로 안부를 묻는 우리는

 

사람만 생각하고 사람에 우네

 

울어도 울어도 눈물은

바다가 되지 않네 마음의 불을 끌 수 없네

 

새가 날아오르도록

불이 타오르도록 놔둘 수밖에는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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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동부소방서 표선119안전센터 임성철 소방장을 추모하며.

 

 

     * 문경수 시집 틀림없는 내가 될 때까지(걷는사람 시인선 108, 2024)에서

                                           *사진 : 깊은 바다 속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