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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월간 '우리詩' 4월호의 시(2)

by 김창집1 2024. 4. 15.

 

 

겨울 설악 방순미

 

 

분주히 날아들던 새소리

낙엽 몰고 다니던 뼈 바람

모두 어디로 갔을까

 

사흘 떡눈으로 묻혀

천년 고요에 잠든 산

 

 

 

 

마음의 진동 이규홍

 

 

둥근 달 보며

잊었던 이름 하나

아련히 떠오른다면

몸속의 자기장

N극에서 나와

S극으로

이동하는 중

 

정월 대보름달 보며

잊었던 얼굴 하나

자꾸 보고 싶어진다면

그것은 마음속 암반

깊숙이 묻어 두었던

마그마

출렁이고 있는 것

 

 

 

 

깔세 - 박용운

 

 

햇살도 비껴가는 골목 안, 쪽방

철새가 부리를 다듬고 있다

 

높이 날 수 없는 천성

매일 한 번씩 바라보는 새벽 별이 유일한 벗이다

 

소득세를 내야 하는데 납부할 청구서는 없고

계절을 품기엔 둥지가 허술하다

 

번식은 사치이고 미래는 무정란 같아

사랑 따윈 주고받지 않는다

 

높고 멀리 날아 용을 잡아먹는 가루다*가 되는 꿈을 매일 꾸는데

허약한 날개의 일상은 한 번도 끝에 다다라 본 적이 없어

중천을 향한 힘겨운 날갯짓, 겨우 파닥임만 있을 뿐이다

 

매정하게 등짝을 할퀴는 그믐의 날카로운 손톱

깔세를 독촉하는 문자,

유리창을 두드리는 시린 바람이

철새 이마에 음산하게 서린다

오늘 같은 내일, 예보도 흐려 있다

 

어제 같은 오늘

오늘 같은 내일, 예보도 흐려 있다

 

먼저 살다간 새들은 어느 전망 좋은 우듬지에 둥지를 틀었을까

얼어붙은 생각까지 녹일 아랫목은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

허약한 부리로 허공 속 질문만 매일 쪼아댄다

 

양지쪽 햇볕은 얼마나 따뜻할까

물 한 컵만으로도 한 달 넘게 살아가는

창틀 위의 선인장

끝까지 버티면서 가시 사이로

꽃봉오리를 올리는 끈기

기어이 불꽃같이 붉은 꽃을 펼쳐낸다

 

입안이 헐도록 생을 오독하던 철새

눈 속의 가시, 울어야 뽑힌다는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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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루다 : 인도 신화에 나오는 인간의 몸에 독수리의 머리와 날개를 가진 새. 비슈누의 화신인 나라야나를 태우고 용을 잡아먹으며 산다.

 

 

 

 

동백冬栢 - 이학균

 

 

우주 하나가 떨어졌다.

 

설레는 첫사랑 하나

운석보다 무겁고,

한설寒雪 속에서 더 짙어진 사랑

 

죽어서도 한 치의 흐트러짐도 용납지 않는

 

그대로, 네 심장에

직선으로 꽂히는 불꽃같다.

 

 

                      *월간 우리4월호(통권 제430)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