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 목련의 푸른 그늘 - 손현숙
햇살이 꽃의 목덜미에 송곳니를 꽂고 정오를 넘는다 나는 매일 저것들의 생기를 빤다 밤이 오면 입술에 흰 피를 묻힌 채 잠속으로 뛰어들 것이다 모르는 척,
나는 아침을 밟으면서 싱싱하다 꽃잎 한 장 넘기는 것은 내가 나를 낳는 일, 깊게 팬 쇄골의 그늘, 목젖까지 부푸는 저 목련의 푸른 그늘
♧ 귀가 지쳤다 - 洪海里
들을 소리
안 들을 소리까지
대책 없이 줄창 듣기만 했다
늘 문이 열려 있어
온갖 잡소리가 다 들어오니
그럴 만도 하지
대문을 걸어 잠글 수 없으니
칭찬 아첨 욕지거리 비난 보이스피싱까지
수시로 괴롭히니 귀가 지쳤다
하루 한시도 쉴 새 없이
한평생 열어놓고 줄곧 당한 귀의 노동
이제 귀가 운다
♧ 다도해 – 박문희
갇힌다는 일은 두렵다
다들 섬을 다녀온 일을 자랑한다
그곳에 부는 바람까지도
가보지 않은 곳은 늘 조심스럽다
아마도에 잠시 갈 일이 있었다
다들 이곳은 앉아 쉬어 보지 못하고 서성거리다 오고는 한다
나도 그러했다
그래도라는 섬을 떠올리다 돌아왔다
아마도
그 섬을 너무 몰랐었다
며칠을 앓아누웠다
털고 일어나 든 생각이다
♧ 유능감 - 박원혜
자신감은 유능감과 접목되어 있다
운수 좋은 어느 날
자신감이라는 귀인 분께서 나의 의식에
슬며시 찾아 들어오시면서 별안간에 나는
쾌활해지고 유쾌해지면서 동시에
유능해졌다
자기 자신에 대한 무한한 신뢰감이 생성
된 것이다 오 마이 갓이시여
오늘 저녁
수영을 마치고 들길로 걸어오면서
벼락처럼 맞은 대박이다 나는 자타가 인정한
게으른 소요학파다
* 월간 『우리詩』 4월호(통권430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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