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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월간 '우리詩' 4월호의 시(1)

by 김창집1 2024. 4. 13.

 

 

저 목련의 푸른 그늘 - 손현숙

 

 

  햇살이 꽃의 목덜미에 송곳니를 꽂고 정오를 넘는다 나는 매일 저것들의 생기를 빤다 밤이 오면 입술에 흰 피를 묻힌 채 잠속으로 뛰어들 것이다 모르는 척,

 

  나는 아침을 밟으면서 싱싱하다 꽃잎 한 장 넘기는 것은 내가 나를 낳는 일, 깊게 팬 쇄골의 그늘, 목젖까지 부푸는 저 목련의 푸른 그늘

 

 

 

 

귀가 지쳤다 - 洪海里

 

 

들을 소리

안 들을 소리까지

대책 없이 줄창 듣기만 했다

 

늘 문이 열려 있어

온갖 잡소리가 다 들어오니

그럴 만도 하지

 

대문을 걸어 잠글 수 없으니

칭찬 아첨 욕지거리 비난 보이스피싱까지

수시로 괴롭히니 귀가 지쳤다

 

하루 한시도 쉴 새 없이

한평생 열어놓고 줄곧 당한 귀의 노동

 

이제 귀가 운다

 

 

 

 

다도해 박문희

 

 

갇힌다는 일은 두렵다

다들 섬을 다녀온 일을 자랑한다

그곳에 부는 바람까지도

가보지 않은 곳은 늘 조심스럽다

아마도에 잠시 갈 일이 있었다

다들 이곳은 앉아 쉬어 보지 못하고 서성거리다 오고는 한다

 

나도 그러했다

그래도라는 섬을 떠올리다 돌아왔다

아마도

그 섬을 너무 몰랐었다

며칠을 앓아누웠다

털고 일어나 든 생각이다

 

 

 

 

유능감 - 박원혜

 

 

자신감은 유능감과 접목되어 있다

운수 좋은 어느 날

자신감이라는 귀인 분께서 나의 의식에

슬며시 찾아 들어오시면서 별안간에 나는

쾌활해지고 유쾌해지면서 동시에

유능해졌다

자기 자신에 대한 무한한 신뢰감이 생성

된 것이다 오 마이 갓이시여

오늘 저녁

수영을 마치고 들길로 걸어오면서

벼락처럼 맞은 대박이다 나는 자타가 인정한

게으른 소요학파다

 

 

                               * 월간 우리4월호(통권430)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