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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강동완 시집 '외로움은 광부의 삽처럼 번들거리네'(3)

by 김창집1 2024. 4. 15.

 

 

구름 위에 구름 - 강동완

 

 

차가운 구름을 좀 뜯어다 베개 속에 넣었다

푹신푹신한 베개는 엄마의 서늘한 목덜미를 감싸고 눈물을 흘리며

잠이 들었다 베개는 늘 속에서부터 녹아내렸다

 

계곡에는 순록들의 뿔과 죽은 난쟁이들이 떠다녔다

히말라야 설산에 산다는 설인은 산을 오로다 죽어간 사람의 엄지손가락만 모았다

엄지손가락에는 지문이 없었다 햇살이 툭 건들고 지나가니 손가락에서 꽃이 피어났다

차가운 구름들은 앙상하게 드러난 엄마의 뼈를 감추었다

그림자 기사들이 사라지면 난 어두운 다락방에서 건담 피규어를 끌어안고 울었다

엄마의 몸은 8천미터 산맥으로 자라났다 그 최고봉 위에 누워서 잠을 잔다

어두운 밤이면 엄마가 히말라야 설인의 후손일 수 있다는

무서운 비밀이 떠다녔다

 

호주머니 속에 고양이 울음소리를 넣었다 엄마는 그 울음소리를 제일 무서워했다

엄마가 회초리를 들 때 난 호주머니 속에 숨겨둔 고양이 울음소리를 꺼낸다

 

메두사의 얼굴처럼, 세상의 모든 빛과 눈은 석고처럼 굳어버렸다

바깥은 뜨거운 햇살이 애벌레처럼 피부를 파고들었지만

엄마의 방은 늘 차가운 눈이 내렸다

 

정복자의 후손처럼 신념의 기득한 사람들은 오늘도 산을 오르고

엄마의 방은 점점 더 커지고 하늘 가까이로 뒤뚱 뒤뚱 움직이고

계곡 옆에 구름으로 지은 내 이글루는 소리 없이 허물어진다

 

어제 산맥을 오르던 산악인 한 명이 실종됐다

엄마의 방엔 누군가의 엄지손가락이 하나 더 늘어났다

천장 위에 모빌처럼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엄지손가락은 가 본 적 없는 머나먼 행성, 출구 없는 겨울밤의 빈 방이었다

 

 

 

 

미역 엄마

 

 

미역이 선착장 옆 시멘트 바닥에 배를 깔고 말라가고 있다

어느 미친 여자의 바람에 흔들리는 검은 머리채 같았다

어제 죽은 사람의 검은 혀 같이 어둡고 말랑말랑했다

바람이 지나가면 미역의 마른 몸에서 죽음의 노래가 흔들흔들 새어 나왔다

엄마는 노란 단무지처럼 미역에 감기어 김밥 같았다

엄마는 아침마다 밥상 위 미역 반찬처럼 접시 속에 둥그렇게 웅크려

우리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것들이 엄마의 몸에 달라붙어 빨판처럼 엄마의 슬픔을 빨아들인다

나는 친구들에게 놀림감이 되면 그들을 증오하며 주머니 속 미역을

질경질경 오래도록 씹었다

지친 엄마가 내 뱃속에서 할복을 하기도 했다 엄마의 칼은 목구멍에서

흘러나오는 따뜻한 문장처럼 부드러웠고 아름다웠다

목구멍 속으로 흘러가던 슬픈 죽음이 생선가시처럼 걸린다

나는 컥컥 검은 죽음을 토해놓는다 죽음의 모습은 날카로웠고 낯설었다

엄마가 개나리꽃 한 송이 들고 미역처럼 내 목구멍 속으로 미끄러진다

엄마는 너무 미끌미끌해서 껴안을 수도 없네요

나는 엄마가 주신 막대사탕 하나 입에 물고 커텐이 쳐진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바람을 맞기 위해 건조대가 세워지면 말라가는 미역 속에서

우리들은 술래잡기를 했다 검은 두려움이 토네이도처럼 몰려올 때

세상에서 제일 안전한곳은 엄마의 등뒤였다

볼 수 없게 깃털구름으로 내 몸을 가렸다 아이들은 나를 영원히 찾을 수 없었지만

엄마는 내가 숨어서 어두운 눈물을 흘리던 곳을 일았다

그곳은 내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엄마가 가르쳐줬던 비밀의 방이었다

지독한 어둠 때문에 슬플 때 미역을 온몸에 감싸거라

그러면 미역 속의 바다의 냄새가 너를 따뜻하게 할 것이다

그리고 너는 투명인간이 되어 아무도 너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여전히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미역이다

잘 말리어진 미역은 비스켓처럼 바삭거렸기 때문이다

부서지는 그 소리는 잠자리가 나뭇잎에서 공중으로 살짝 날아오르는 소리였다

내가 태어나기 전 엄마가 제일 좋아했고

여전히 엄마는 허리를 굽힌 채 따뜻한 햇살 속에서 바삭거리며

잘 말리어져 가고 있네요

영원히 사랑해요, 미끌미끌한 미역 엄마

 

 

     *강동완 시집 외로움은 광부의 삽처럼 번들거리네(시와 세계, 2023)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