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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월간 '우리詩' 4월호의 시(4)

by 김창집1 2024. 4. 19.

 

 

재촉 - 이산

 

 

휠체어, 앞에 섰다

세상 밖으로 고정된 어머니 눈길은

오늘도 무심하다

 

얼굴을 확연히 내밀며 이름을 일러 줘도

내 아들이 아니라고 도리질하고

불러도 또 불러 봐도

청국장 밥상의 도란거리던 이야기가

최종본이라 생각하는지

희미한 미소는 항상 저쪽에 있다

 

텅 빈 허공의 무수한 이들과

나직이 선문답을 이어가다가

문득, 또렷한 입술이 어두워졌다

-쟤들이 자꾸 가자고 재촉하네

 

느리게 익어 가는 하늘 저편으로

까마귀 떼 줄지어 날아간다

 

 

 

 

얼굴 - 이영란

 

 

  깊숙이 보이지 않는 것들이 깜빡거렸다 자고 있는 루피를 보았다 초침이 없는 시계는 멀리 가 있었다

 

  자는 내 얼굴을 보고 싶어 거울을 머리맡에 놓고 잤다

 

  나는 몇 시부터 잠을 잤는지 몰랐다 일어나면 새벽이었다 커튼은 안과 밖이 선명했다 거울을 보면 내일은 많이 늙어 있을 것 같았다

 

  보도블록을 세다가 오후를 다 보낸 날은 일찍 잤다 두 번 일어나서 거울을 본 기억이 있다

 

  루피는 거울이 없어도 잘 잤다 언제 눈을 떴는지 아무도 몰랐다

 

  아직도 잠자는 내 얼굴을 볼 수 없다 그래서 자꾸 잠을 잔다 깨어 있을 때는 깜짝깜짝 놀란다

 

 

 

 

사위어 가는 길에서 - 임미리

 

 

새벽, 끝없이 이어지는 안개 속에 갇힌다

시간이 지나면 걷히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네게로 가는 길, 어스름에 스민다

속 깊은 곳에서부터 안달이 꾸물댄다

자욱한 안개가 걷히고 아침이 열리면

온전한 하루가 맑음으로 넘쳐나리라

찬란한 빛이 소리 없이 사라지고

밤이 스미는 날, 수없이 되풀이되었는데

시간이 더딘 것은 어찌할 수 없는 비에

다시 못 올 날들을 보내 버린 아득함이다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이 길 끝나는 곳

너는 거기 온전히 있을 것을 알지만

새벽안개는 조바심 나게 하는 걸림돌이다

수많은 날이 이렇게 가고 또 왔으므로

오롯한 번민은 내 것이 아니기를

애간장에 사위어 가고, 마침내 먼 곳에서부터

아침을 돌려주러 산천이 몸을 튼다

 

 

 

 

- 임보

   -담시 9

 

 

(오늘은 어린 손자에게 물에 대해 얘기합니다.)

 

물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며 또한 터전이란다.

 

땅속에서 물이 새어나온 곳을 샘이라 이르며

그 흐르는 물들이 모여 개울이 되고

그 개울들이 모여 강을 이루며 바다에 이른다.

 

바다가 지구 표면의 7할을 차지하고 있는데

물이 지상의 산들 높이보다 깊어

육지의 흙으로 바다를 메워도

지구의 평균 수심이 3,000미터 이상이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어쩌면

지구地球가 아니라 수구水球라고 하는 게 더 적절할 것 같다.

 

모든 생명체는 물에서 생겨났다.

지상의 모든 생명체의 고향은 바다

바다에서 생겨나 서서히 육지로 기어올라 진화를 했다는 것 아니냐?

그러니 날개를 가진 동물들이 가장 앞서 달려가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그 물의 형태가 일정하지 않구나.

보통 때는 액체의 상태이지만 열을 받으면 수증기가 되어

구름으로 허공을 떠돌다 비나 눈이 되어 내리기도 하고

추우면 얼음으로 굳어 단단한 고체로 변한다.

 

그런 물이 생명의 터전이라니 놀랍기만 하다.

 

 

                       *월간 우리4월호(통권 430)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