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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임채성 시조집 '메께라'의 시조(3)

by 김창집1 2024. 4. 18.

 

 

고사리장마 1

 

 

애기동백 털진달래

꽃불지핀 사월이면

 

식은 잿불 다시 일까

소방호스

드리운 하늘

 

화산도 봄의 제단이

장대비에

젖고

있네

 

 

 

 

고사리장마 2

 

 

육순 칠순 다 지나도록

긋지 않는 눈물이 있네

 

산밭뙈기 일구려다 산사람이 되어버린

울 아방 목쉰 울음이 피에 젖던 곡우 무렵

 

올레 안 울담마저 재가 된 그날 이후

화산섬 산과 들이 꽃밭 밀밭 일구어도

까맣게 타버린 돌엔 화색 다신 돌지 않고

 

이제 그만 잊으라고

관 뚜껑을 덮으라고

 

죽창같이 여문 햇살 중산간을 돌아올 때

고사리 어린 손들도 손사래를 치고 있다

 

 

 

 

고사리장마 3

 

 

산새도 바닷새도 사월엔 노래를 접네

피멍 든 동백 꽃잎 검게 지는 섬의 봄날

삽시에 터지는 울음

이른 장마 예보하네

 

사라지는 이름들과 살아지는 빗돌 사이

술 한 잔 받지 못한 봉인된 산담 앞에

그 누가 하얀 삘기꽃

몰래 피우고 갔을까

 

한라산 고사리는 제사상에 올리지 마라

핏물과 추깃물에 살진 그 몸 씻으란 듯

하늘도 정수리 위로

동이물을 쏟고 있네

 

 

                   * 임채성 시조집 메께라(고요아침, 2024)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