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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김순선 시집 '어느 토요일 오후'의 시(1)

by 김창집1 2024. 4. 20.

 

 

서시

 

어느 토요일

오후

 

 

들개 바람 불어오는 들판 쏘다니듯

거리를 기웃거리다

중산간 마을에 펼쳐지는 별들의 고향 같은

메밀 집 간판 보고 무작정 들어갔다

하안 소금꽃이 서걱거리는 메밀밭 언저리에서

오랜 시간 숙성된

가늘고 긴 이야기가 이이지는

담백한 메밀국수 속으로

 

목적 없이 시선이 머무는 곳에서

물결 사이에 고여 있는

풍경을 조준하며

왜가리 결음으로

물 위를 더듬는다

돌담 위에 앉아 멍때리는 길고양이처럼

물속을 들여다보노라면

누군가 떨어뜨린

주인 없는 이야기 하나

말갛게 고개를

내민다

 

 

*전시회에서

 

 

성산포의 아침

     - 김용주 미술전 바람 생기는데를 보고

 

 

갈매기들의 날갯짓 소리에

기지개를 켜는 아침

바다의 술렁거림으로 성산포가 밝아온다

 

긴긴밤 어둠 속에서 날개를 접이

고단한 하루와 뒹글다가

근심과 걱정 다 떨쳐버리듯

부르르 날개를 털며

설렘으로 아침을 맞이한다

 

바람, 너는 나의 날개

나의 에너지

여행 가방을 챙기듯

바람의 방방을 바라보며

바람을 맞대한다

오늘 다시 바람 앞에 곤두박질치는 순간이 다가와도

더 높이 더 멀리

비상을 꿈꾸며 하루를 시작하련다

 

오종종 모여든

갈매기들의 피난민 수용소 같은

시끄러운 성산포의 아침은

황금빛으로 밝아오는

희망이어라

 

 

 

 

나무로 살아가기

    -‘2022년 작은 세상 그 예술의 풍경 선물전강미순 작품을 보고

 

 

말을 아끼듯

몸으로 말하는 사람

주홍글씨 같은 침묵을 목에 걸고

모진 세월 버티어왔네

날마다 토해내고 싶은 울분

안으로 삭이며

오롯이

내가 나다움으로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햇빛과 비와

바람의 사랑으로

인내의 시간을 견딜 수 있었으리라

흉흉한 세월 다 보내면서도

잎을 피울 수 있었으리라

가지가 휘어지며 몸이 뒤틀리면서도

누군가의 그늘이 될 수 있었으리라

내 이름으로

살아갈 수 있었으리라

 

 

*사진전에서

 

 

너에게로

    -김경숙 사진전을 보고

 

 

기적 소리 같은

파도의 심장 소리 들린다

먼 바다에서부터

숨 가쁘게 달리와

쓰러지듯 엎디어

온몸으로 백사장을

어루만진다

 

썰물과 밀물 사이에서

짧은 재회를 위하여

뼛속 길이

에로스의 사랑을

고백 한다

 

물거품처럼 흩어지는

소유할 수 없는

파도 같은 사랑

백사장의 심장을 두드리다 돌아가는

길목에

사랑의 물집 같은

조개껍데기 하나 솟아올랐다

 

 

                *김순선 시집 어느 토요일 오후(한그루, 2024)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