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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김신자 시조집 '봄비에 썼던 문장은 돌아오지 않는다' 발간

by 김창집1 2024. 5. 30.

 

 

시인의 말

 

 

애틋한 밑줄 하나

못 그은 그런 오후엔

말도 시들고 글도 죽고 정신도 죽는다

 

미끄러지는 기억을 놓치지 않으려

나를 기다리는 모든 것들에게

풍경이 되어주던 것을 생각하니

알몸의 인어들이 봄으로 돋아났다

그래서 비비작작 시의 집을 지었다

단골집 하나 가진 듯

충분하다

 

 

                                  2024년 봄에

                                           김신자

 

 


 

시작노트 1

 

 

나의 유년기는 주로 바다와 대화했다

내가 쓰는 어른의 말은 모두 바다로부터 온 것이며,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언어적 유산이다

나의 어휘와 문체는 어머니의 내면에서 발원했고

또한 용수리 바다에서 발원했다

분명 버려진 풍경이었지만,

어머니로 인해 나에게는 따스한 풍경이 되었다

 

 


 

옴막*, 옴막해불라

 

 

익숙한

한 끼 식사

 

고마움을

모르던

 

들굼날굼**

숟가락에

 

사랑도

들굼날굼

 

이제야

말씀의 뜻을 아네

옴막, 옴막해불라

 

 

---

* 옴막 : ‘음식 따위를 입속으로 넣는 꼴의 제주어.

** 들굼날굼 : ‘들어가고 나오는 구멍의 제주어.

 

 


 

어부바

 

 

어린 날 우리에겐 설레는 언어였지

어부바, 어부바 하며 등 내밀며 건네던 말

설명을 하지 않아도 애틋함을 배웠네

 

어둠의 마당에서 구부정한 어떤 생

되풀이 둥개둥개 포근한 그 마음이

메마른 등어깨 타고 내 안의 집이 되던

 

서쪽으로 기울어진 어둠이 몰려오면

지우고 지워내도 지워지지 않는 기억

어머니 굽은 등으로 전해오는 배냇언어여

 

 

*김신자 시조집 봄비에 썼던 문장은 돌아오지 않는다(동학시인선 122,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