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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가을 들꽃의 노래(2)

by 김창집1 2024. 10. 6.

 

 

해오라비난초 - 김승기

 

 

백로의 넋을 품고

그렇게도 날고 싶었을까

 

날아올라 봐야

무한허공

 

꽃으로 앉은

행복 뿌리칠 만큼

날아야 하는 이유 있을까

 

펼쳐든 날개깃

가슴 황홀히 눈부시지만

 

하얗게 찢어지는 몸부림

눈물겹다

 

 

 

 

산국향(山菊香) - 권경업

 

 

어서 나가 보거라

저기, 저어기

너희 큰고모님 오시나 보다

 

삽작 밖, 저문 돌담길

나를 업고 서성이던

! 누님의 귓볼 내음

 

 

 

 

절굿대 - 김순남

 

 

그대가 부르지 않아도

나는 그대에게로 간다

 

담벼락에 펄펄 뛰는 맥박이

순하게 바늘가시로 돋는

꽃송이를 위하여

다랑쉬 숨가쁜 언덕이나

족은드레왓, 허허로운 벌판 어디쯤

그대의 앵글 속에 갇히고 싶다

 

눈뜨고 바라보면 흔들리는 세상도

지그시 반쪽 눈 닫고 바라보면

어찌 알았으랴

어느 간이역과 마주친 온갖

실망과 분노와 멸시마저도

청보라 깊은 색칠로

단꿈 피워 얹어 놓을 줄을.

 

 

 

 

상사화相思花 4 - 임승진

 

 

폭풍우 속으로

눈물처럼 걷는다

 

하루가 천 년 같아도

꽃 피울 날 기다렸는데

 

불타는 햇볕보다

더 뜨거운 약속

 

그리움 지울 수 없다면

언제나 만날 수는 있을까

 

 

 

 

으악새 - 강영은

 

 

  으악새 슬피 우는, 종결형의 가을이 매번 찾아왔으므로 나는 으악새가 호사도요, 흑꼬리도요, 알락꼬리마도요 같은, 울음 끝이 긴 새 이름인 줄만 알았다

 

  한라산의 능선 길, 하얀 뼈마디 숨겨진 길을 걸으며 억새의 울음소리를 잠시 들은 적은 있지만 내 몸의 깃털들 빠져나가 바람에 나부끼는 유목의 가을, 능선의 목울대를 조율하는 새를 보았다

 

  生에 더 오를 일이 남아 있지 않다고, 농약 탄 막걸리를 목구멍에 들이 부었다는 작은 외삼촌, 한라산 중턱에 무덤 한 채 세운 그를 만나러 앞 오름 지나던 그 날, 차창 너머 햇빛에 머리 푼 으악새,

 

  출렁이는 몸짓이 뼈만 남은 삼촌의 손가락 같았다 어깨 들썩이며 우는 삼촌의 아으, 희디흰 손가락, 그날 이후 손가락만 남아 손가락이 입이 된 새를 사랑하게 되었다 으악새 둥지를 내 몸에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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