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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가을 들꽃의 노래(3)

by 김창집1 2024. 10. 7.

 

산비장이 - 김순남

 

 

다랑쉬 가파른 언덕 속살이

패도록 꼿꼿이 서서

해종일 종달리 바다만 바라본다.

빌레왓 고망으로

연기와 따발총이 고득 메와져 왐신디

코 막고 귀 막을 저를 이서시냐

넋 먼저 돌아나부렀주

오십여 년 만에

4.3 진상규명 운동하는 사람들

꽃상여 맹글아 보젠 호단

뼈마저 불 살라불곡

다랑쉬굴은 시멘트로 막아 불멍

희엇뜩한 정보분가. 경찰은

무싱거 경 모수와 하는지 모르켜

놈인 혼 번 죽어지기도 힘 드는데

우린 숨 못 쉬어 죽어신디

뼈 태우멍 또 죽은 거십주

춘봉이 어멍, 덕삼이 아방, 석삼이 삼춘,

예닐곱 먹은 그 꼬맹이 꺼정

어느 빌레왓딜 곱앙 뎅겸싱지?

이디 옆이 와 져시민 좋으켜 마는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라서

저 싸늘한 역사의 강을 깨고나와

두루 두루 안부를 묻는데

이제는, 아무도

비통해 하지 않는 꽃송이를 안고

이 가을 고삿길을

발그레 문지른다.

 

 

 

이질풀 - 김승기

 

 

꽃을 마주해 보면 알게 됩니다

사랑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눈맞춤을 해 보면 알게 됩니다

꽃은 꽃으로 말을 합니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제 몸 살라 피워내는 향기를 붙잡지 않고

바람에게 모두 내어주며

사랑은 이렇게 하는 거라고

침묵으로 말을 합니다

그 꽃이 이질풀로 피었습니다

 

어릴 때 배앓이를 심하게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아픔의 기억이 골수에 유전인자로 박혀

사랑법을 모르는 서투른 세상살이

벼랑 끝에 설 때마다

설사를 하곤 했습니다

타는 여름

잦은 복통과 현기증으로 쓰러진 자리에서

목마른 눈물을 움켜잡고

겨우 눈을 떴을 때,

이질풀

환한 눈빛으로 다가와

흩어진 마음 쓸어 담는 그대를 만났습니다

어머니의 약손 같은 손길

차가운 배가 따뜻해져 옵니다

더 이상 설사를 하지 않습니다

다시 사랑법을 배웁니다

내 몸에도 이제 단풍 들겠지만

낙엽 되어 흙으로 내려앉는 순간까지

온 하늘 붉게 물들이는 저녁노을 같은 열정을

마지막 불꽃으로 활활 태우라고

이질풀에게서 뒤늦은 사랑법을 배웁니다

꽃과 이야기하다 보면 알게 됩니다

있는 그 자리에서 뿌리내리고 잎 틔우며

꽃으로 앉아 있는 순간이 행복이라고

웃음으로 말을 합니다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꽃이 어디에 있으며

비에 젖지 않는 꽃이 어디에 있느냐고

향기로 말을 합니다

 

 


 

한라부추 꽃 - 김윤숙

 

 

누군가의 위로가

 

갈바람이 스며있어

 

천백고지 습지 데워 젖은 발을 감싸나

 

보랏빛 네 안의 영토

 

그리움을 쟁이다

 

 


 

따라비 물봉선 - 양시연

 

 

따라비 가는 길은 묵언정진 길이다

그것도 가을 하늘 단청 펼친 오름 앞에

어디에 숨어 있었나, 놀래키는 물봉선

 

그래 저 떼쟁이 예닐곱 살 떼쟁이야

선천성 농아지만 그래도 소리는 남아

어마아, 어마 어마아 그 때 그 소리는 남아

 

그때 그 소리만 붉디붉은 꽃으로 피어

꽃을 떠받치는 저 조막만한 하얀 손

나에게 손말을 거네, 어마아 어마어마

 

 


 

뚱딴지 - 최범영

 

 

  형은 매 새끼를 내려다 키웠다. 매가 개구리 뒷다리 먹고 나면 꽁지를 내밀어 바로 밑 오줌 파내기에 볼 일을 보았다. 으스스 저녁 무서움에 소막간 갈 수 없어 오줌 파내기에 큰일 보다 혼나던 날 매는 끼룩 밤새 뒤척였다. 마당 가운데 병아리 한 떼, 지게 소고발 속에 둥지를 틀었다. 매가 커서 휘휘 마당을 돌 때마다 어미 닭은 죽는 재수. 병아리는 거름탕 옆 짚더미로 숨거나 호르륵 소고발 속 어미 품으로 들었다. 하라는 공부나 하지, 뚱딴지같이 웬 매 새끼를 키우는 겨? 형 나무라던 어머니 소리도 지치던 날 삽작거리 수문장 같은 뚱딴지는 노랗게 꽃을 피웠다.

 

  성님, 매 키워 새 좀 잡었슈?

  명절이면 형님이 그린 산수화에 뚱딴지같이 매를 그려 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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