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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가을 들꽃의 노래(1)

by 김창집1 2024. 10. 5.

 

 

용담꽃 - 홍해리

 

 

떠나가도 눈에 선히 밟히는 사람아

돌아와 서성이는 텅 빈 안마당에

스산히 마른 가슴만 홀로 서걱이는데

소리치며 달리던 초록빛 바람하며

이제와 불꽃 육신 스스로 태우는 산천

서리하늘 찬바람에 기러기 떠도

입 꼭꼭 다물고 떠나버린 사람아

달빛에 젖은 몸이 허기가 져서

너울너울 천지간에 흐늑이는데

잔칫집 불빛처럼 화안히 피어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하리라’*

떠나가도 눈에 선히 밟히는 사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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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담의 꽃말

 

 


 

한라돌쩌귀 김윤숙

 

 

삼각봉

 

능선에서도

 

바람의 말

 

귀 안 기울던

 

보랏빛 투구모자

 

눈물 그렁 사내여

 

한번쯤

 

저잣거리의

 

가을볕에 내리고픈

 

 


 

수크령 - 조한일

 

 

수렁에서 날 건져준

그 사람을 위해서

 

들녘에 스크럼 짜고

하늘 보고 누웠어요

 

그 사람

해코지하면

가만 두지 않아요

 

 


 

구절초 - 김길웅

 

 

   떼거리로 낙목落木의 들판을 질러가는 바람소리에 귀 틀어막고 묵직이 내려앉은 한천寒天 귀퉁이 파닥이는 빈 가지에 눈 감았습니다 겨울의 문턱에 나 앉아 한 겹 남루로 떨고 있지만 머릿속엔 쏟아져 내리던 별의 기억뿐입니다 언덕배기에서 몇 년을 두고 바라보는 별은 빛이었습니다 빛은 몸 안으로 스며 언 살을 온기로 친친 감아주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화려한 문명의 의상이 아닌데도 하늘에서 지상에 내린, 찬란하지는 않지만 유년의 마당에 놀던 가장 따스한 노란 병아리 빛, 섬뜩한 빛의 서슬에 눈이 띄었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내가 별이 돼 있으니까요 춥지 않습니다

이 꽃이 지면 가을도 진다

한적한 산길에 피어있는

 

구절초 꽃처럼 소박하게 살다 가신

어머님이 오늘 따라 더욱 그립다.

 

 


 

해국 - 나영애

 

 

바다여 나의 바다여

억겁의 세월 속에

그대 향하여 피어난

해국입니다

 

은하수 같은 사모의 언어

별꽃으로 펴

바다

그대에게 뿌렸습니다

 

이 몸

바위에 묶였으나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임 향한 나의 뿌리

결단코

그대 깊은 가슴에 뻗으리다

 

하늘로만 향하여 물들어 가는 이여

단 한 번만이라도

내게 고개 돌리소서

 

당신의 사랑보다 깊은

그대만 일평생 바라기하는

, 해국을 봐 주소서

 

 


 

꽃무릇 2 - 도경희

 

 

마음에 넘쳐흘러

목구멍에 막힌 소리

빛의 시위를 당긴다

 

화살은 날카롭게

선병질 심한 심장 꿰뚫고

 

가시 삼키듯 아슬히 삼키는

천년도 뜨거운 이름

 

호젓한 숲덤불

몸 낮추어가는 바람에

퍼덕이는 붉은 나비

 

사랑이 횃불로 타오르기까지

부챗살 환한 감옥에

기꺼이 혼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