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인의 일상
뜻밖의 지인 소식 불러들인 카톡 창
꼬리 물고 이어지는 삼가 조의 문장들
안과 밖 경계를 가르는, 세상의 절벽 앞에
저 홀로 앓던 지병 꼭꼭 숨긴 쓸쓸이
유정하지 못한 우리, 무정을 후회하며
그래도 ‘밥은 먹어야 해’ 힘을 싣는 먼 장래
♧ 바람의 날
무엇 찾아 오르나 한 무리의 누 떼처럼
사람 틈새 비집어 톡톡 쏘는 투구꽃에
노꼬메 바람의 언덕 거슬러 올라선 백두산
하늘 위에 천지 천지 위에 하늘 연못
새파란 신앙으로 끄덕 않던 저 물빛
간절히 모은 두 손에 꿈틀 흐려지던 낯빛이다
어느 길 어느 방향 내 영토 딛고서도
한 뼘의 바람 길목 잠깐 놓친 시공의
묵언의 속내를 알아, 그 말씀에 귀를 열다
♧ 아무도 이별을 원치 않았다
언덕배기 차도 옆 잠깐 스친 검정 개
몇 시간 지난 후에도 여전히 그 자리다
신호등 순간 바뀌어 차바퀴로 뛰어든다
기억해 낸 무언가 살 비비던 냄새일까
위험도 불사하고 킁킁대던 그 시절
까맣게 젖은 눈동자, 절레절레 아니라는
♧ 카라 꽃
마지막 남아 있는
한 장의 백지 같은
둘둘 말아 전하지 못한
날 세운 나의 안부
그렇게 떠나도 좋다
없는 말을 또 써야 할까
♧ 물수제비
눈 깜짝할 사이
휙 스치고 지났다
무엇이었을까
심중으로 홀연히 가라앉아
시치미 뚝 떼는 오후다,
어느새 박혀 들다
* 김윤숙 시집 『저 파랑을 너에게 줄 것이다』 (가히, 2024)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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