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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제주시조' 2024 제33호의 시조(6)

by 김창집1 2025. 1. 6.

 

 

작품에 손대지 마시오 김진숙

 

 

바다 건너 제주를 만나러 오실 때는

구축함과 전투기는 가져오지 마세요

초록을 알아차리는 숨, 그것이면 충분해요

 

구럼비 너럭바위도 다 깨부순 저들인데

오름 몇 개쯤이야 단번에 밀어버릴 테지

그림자 검게 드리운 대수산봉 독자봉

 

난산 신산 수산 성산 고성과 온평까지

물길 숨길 다 막아 활주로 만든다지

돌담도 여백을 두어 바람길 연다는데

 

저어새 알락도요 검독수리 재갈매기

새들의 국제공항은 이제 문을 닫으라니

그 숨결 푸른 미래는 어디에서 싹틀까

 

 


 

한라산이 아프다 김춘기

 

 

  숨찬 청소 트럭 비탈 기어오른다.

 

  귀가 중 타이어에 밟힌 비바리뱀, 참개구리, 제주도롱뇽이 뼈만 남은 채 갑골문자가 되어 시멘트 길섶에 흩어져 있다. 서귀포 위생매립장 울 밖에서 만개하던 산딸나무 때죽나무는 돌아앉아 코를 막고 있다. 굴삭기 무쇠 이빨이 산허리를 찍을 때마다 깔끔좁쌀풀, 섬매발톱, 구름체꽃, 한라장구채가 몸을 파르르 떨며, 뒷걸음질이다. 덤프가 토사물을 게워놓자 악취가 안개의 등을 떠밀며 시멘트 길을 따라 내려간다. 불도저는 한라산 옆구리의 포실포실한 흙을 밀어다 그 위에 다져 넣는다. 배 주린 산까치와 큰부리까마귀가 검은 비닐을 헤집으며, 머리 반쪽뿐인 북어를 서로 빼앗는다. 산책 나온 노루가 목 잘린 마가목을 올려다보고는 금세 산기슭으로 사라진다. 먹장구름이 떼를 이뤄 서풍을 타고 온다. 어머니 눈물 같은 비가 계곡의 울음을 오후 내내 적시고 있다.

 

  한라산 중턱 곳곳이 만성 복통 앓고 있다.

 

 


 

눈빛 - 김향진

 

 

봄날에 심은 국화

올가을엔 피지 않아

 

내 손녀 서울 갈 때

눈 속에 담아 갔나

 

내년 봄

텅 빈 마당에

그리움 또 심어야지

 

손녀에게 나누어 줄

가을이 있다는 것

 

한 자락 마파람이

내 등을 어루만진다

 

손녀가

머물다 간 집

국화에 거름 준다

 

 


 

칠성대* - 김희운

 

 

모흥혈 바라보며 별자리는 일곱 개라

집터 잡고 경계 삼아 일도 이도 삼도 마을

성주청 그 자리에는 달을 심어 월대라고

 

오랜 날 이어온 뜻 고민 한번 해봤을까

일제강점 피하지 못해 흔적 없이 무너졌지만

망곡제 피명 든 자국 간절하여 뒤졌으니

 

사라진 지 팔십여 년 흔적 쫓아 다 왔는데

멍울진 슬픔 이어 복원 소원 이루기 전

별자리 동서로 나누다니 노여움 어쩌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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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성단이라고도 한다.

 

 


 

서건도 문경선

 

 

바람만 즐겨 찾는 산번지 작은 섬

파도가 떠난 자리 태어난 길 하나

돌멩이 작은 숨결마다 푸른 등을 달았다

 

바다로 창을 낸 강정마을 사람들

이쪽저쪽 갈라져 애가 타던 사람들

바람결 돌고래 노래 귀 기울여 듣는다

 

당신에게 가는 길은 징검다리 놓인 길

울퉁불퉁 모난 들들 서로서로 기대어

다 같이 등근 달을 본다

어울령 달을 본다 다 혼디

 

 

                  *제주시조시인협회 간 제주시조2024(통권 제33)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