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초대석]
♧ 휘영청, 달밤 – 오종문
누리 휘영청 밝은 이 달밤이 너무 좋다
비롯해 발돋움하고 무르익고 머무르는
단정한 은빛 공기에 섞이는 게 참 좋다
탕진한 사랑 얘기 펼쳐 놓은 어린 우주
별말 없이 따뜻하고 별스럽게 아름다운
총망히 옮겨 적는 말 애잔하다 안쓰럽다
뭉툭한 허물 앞에 서게 하는 것은 뭘까
심장에 수혈되는 휘영청 몽유 달빛
꽃구름 하늘 궁전에 백일홍도 젖겠다
사는 게 혀의 감옥에 덜컥 갇힐지라도
그냥 눈물 핑 도는, 그리하여 슬퍼진 길
고요 속 풀벌레 소리 중력을 관통한다
♧ 그, 랩소디처럼 – 서숙희
엄마, 지금 막 사람을 죽였어요*
누구처럼 햇빛이 눈부셔서는 아니에요
잘못 낀 첫 단추처럼 첫 문장이 어긋났어요
끝낸다는 건 방아쇠를 당기는 거였어요
소리는 명쾌하게 전말을 관통했어요
끝끝내 발설 못한 배후도 평온히 잠들었어요
무덤처럼 튼튼한 테이블을 놓을 거예요
새하얀 식탁보를 반듯하게 거기 깔고
날마다 흰 구름밥을 짓고 또 지을 거예요
몇 날과 며칠을 구름밥을 먹고 먹어도
뭉게뭉게 돌덩이 같은 슬픔이 자란다면
천천히 그냥 슬프도록, 그냥 둘 거예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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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ma, just killed a man, 퀸의 노래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회원 뜨락]
♧ 살다 보니 – 강창유
어우렁 더우렁 살다 보니
인생 삶의 꿈이 하늘 찾아 가는 날
노래 부른다
인생 끝자락이여
♧ 감정을 리셋하다 – 김영옥
단톡방 댓글 한 마니
송곳으로 파고 든다
쏟아 부은 열정이
통증으로 되돌아올 때
앞뒤 생략하고
감정의 리셋 버튼을 먼저
누른다는 그녀
속마음 활짝 열며
가까이 다가간다는 건
쉽게 상처받을 수도 있다는 것
잠시 소통을 줄이며
넘치는 인맥의 군살을 뺀다
꾹꾹 눌러 쪽 짜낸
튜브 치약처럼, 가끔은
감정을 정리한다
♧ 꽃을 보는 너도 꽃이다 – 김진율
그것을 가까이서
거울 보듯 보려하고
끗을 가까이서
임 보듯 보려하고
히야 꽃이다
모두가 꽃이다,
너는 희망의 꽃
너는 행운의 꽃
너는 미소꽃
너는 향기꽃
정원에 백합은
네 미소로 피어나고
담 옆에 분꽃은
네 향기로 피어나고
길 가던 나그네
꽃이 되어 쉬다 간다
히야 꽃이다
모두가 꽃이다,
바라보면 너도 꽃이다.
*대정현문학회 간 『대정현 문학』 (2024, 통권 9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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