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 – 송두영
사람은 할 말 다하고
사는 게 아니여
깡마른 보리밭에
보릿대 움켜쥐며
고고리 손으로 비벼
보릿고개 넘긴 말
한 사발 탁배기로
얼큰하게 달군 여름
첫째 놈 둘째 놈
막내까지 불러들여
이놈들 아방이름 써보라
맨바닥에 흘린 말
망종 때를 그리며
걸어보는 보리밭길
그때는 경허명도
악착고치 살아신디
하지에 잔기침 흔적
청보리로 써 내린 말
♧ 날숨의 법칙 – 양상보
법전의 말씀대로 올라보는 산꼭대기
한 계단식 내 닫으며 어제를 지워낸다
허공에 맑은 울림이 메아리로 오기까지
가다가다 힘이 들 땐 날숨을 풀어본다
시작도 끝마저도 세상에 내놓는 일
마지막 곡기를 물리고 후유, 하고 내뱉던
♧ 절물 – 오영호
언제부턴가 개발이란 깃발 꽂고
산야든 목장이든 포크레인 머문 곳마다
흥건히 검붉은 피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끝내 ‘음용 불가’ 박힌 푯말 앞에
목마른 등산객이 말없이 돌아가고
노루도 머뭇거리다 줄행랑을 치고 마는
-『절물』 부분
♧ 간혹, 로또 – 오은기
로또 일등 당첨으로 대박 난 복권방
밥 먹는 시간 빼곤 앉을 틈 없다는데
행운을 쫓는 사람들
그 틈에나 껴볼까
돈이면 염라대왕도 부릴 수 있다고?
초등학생 장래희망도 의사 판사 아닌 건물주
태생이 흙수저라면 먼 하늘 별이나 딸까
오보록한 토끼풀 그 망망을 헤집다가
별똥별처럼 스치는 문득 전화벨 소리
가까이 울 엄마에겐 어찌 보면 내가 로또
♧ 풍선 – 이정숙
북에서 보내 온 쓰레기 풍선
땜시
내 어린 날 풍선은 오염되고
스크래치나고
운동회, 가을 하늘가 무지개가 섰다
*제주시조시인협회 간 『제주시조』 (2024, 통권제33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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