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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최기종 시집 '만나자'의 시(11)

by 김창집1 2025. 2. 16.

 

 

 

신용길의 눈

 

 

1989년에 교원노조에 참여했다고

정부가 나서서 선생님들을

감옥에 보내고 해직시켰다면

소가 웃을 일이지

그런데 그때는 그랬어

1,500여 가입교사들이

길거리 낙엽처럼 굴러 떨어졌지

 

용길이도 그때

노조창립대회에서 축시 낭독했다고

구속되고 파면되고 학교를 떠나야 했으니

그러면서 건강이 나빠져서 목숨까지 버렸으니

용길이 죽으면서 두 눈을 내놓았어

그가 살아서 보지 못한 세상을

죽어서라도 보겠다고 병원에 기증했어

그 슬픈 눈으로, 형형한 그 눈빛으로

우리 아이들이 마음껏 뛰노는 세상을 보겠다고

남누리 북누리 하나 되는 세상을 보겠다고

누군가의 두 눈이 되어주었지

 

그렇게 30년이 훌쩍 지났어

그런데 부끄러워라

학교는 여전히 옛날 그대로야

지금도 아이들은 동아줄에 매달려 살아

행복을 빼앗기고 그 시절을 담보하고 있이

교과서에 들어찬 철조망도 그대로야

참말로 미안하구만

우리 조금만 댕겨서 싸우면 명명백백하게

입시 지옥 사라지고 학교가 정상화 될 줄 알았어

아이들이 닫힌 교문을 열고 쏟아질 줄 알았어

 

, 용길이

죽어서라도 보겠다던 그 세상 아직도 오지 않았으니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고

무던히 다지고 다지면서 살아왔건만

달라진 게 하나도 없으니

이젠 개천 같은 건 없어지고 출발선도 달라졌으니

우리들이 세상을 너무 쉽게 본 것 같아

그리운 것들은 이리 더디 오는 것인지

그리운 것들은 허공에서만 살아야 하는지

용길이! 그 두 눈이 미안하이

 

 

*문제의 고자이마을 위령비 모자이크 그림


 

따이한 제사

 

 

고자이마을 따이한 제삿날

붉은색 천막이 쳐지고 오색 깃발이 나부꼈다

제단에는 생쌀, 메밥, 돼지머리, 과일류, 인조 화폐가 차려지고

스피커에서는 비장한 풍의 투쟁 가요가 흘러나온다

제사장은 원귀여 망자여 희생자를 부르면서 향을 피우고

유족들이 하나둘 나와서 향을 피우고 합장을 한다

인민위원회 부주석의 기념사와 축사가 이어지고

생존자 응우엔떤런 씨가 나와서 증언한다

 

  음력 정월이었지 새벽부터 마을에 포격이 시작되었어 우리 가족은 근처 방공호로 숨어들었지 날이 밝아오니까 마을 동구에서 연달아 총소리가 났어 비명 소리가 들리고 울부짖는 소리도 났어 어머니는 괜찮다고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우리를 안심시켰어 그런데 누군가 입구에서 나오라고 소리쳤어 들킨 거야 손을 들고 나갔지 따이한이었어 마을이 온통 불바다였어 따이한은 우리를 데리고 고샅길을 지나서 들판으로 갔어 거기에는 마을 사람들이 모두 바닥에 엎드려 있었지 한 시간가량 지나서 누군가 명령하니까 총을 마구 쏘아댔어 수류탄도 터졌어 아비규환이었어 그런데 수류탄 하나가 내 발뒤꿈치에 맞고 떨어졌어 본능적으로 서너 발 뛰어가 엎드렸지 수류탄이 터지고 그 뒤는 생각이 안 나 산으로 피했던 사람들이 돌아와서야 깨어났어 마을 사람들 다 죽었데 시신이 널려 있었어 두개골이 깨지고 창자가 터지고 하반신이 없어지고 정말 참혹했어

 

위령비에는

희생자 380명의 이름이 빽빽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1966226

미 제국주의자 지휘 아래 남조선 군인들이 무고한 양민들을 학살했다고

뒷면은 맹호부대 마크를 단 국군이 수류탄을 들고 서 있는 벽화였다

벽화는 말하고 있었다

고자이마을 학살은 남조선에 책임이 있다고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아직도 물속이다

 

 

아직도 물속이다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아직도 진실은 인양되지 않았다

우리 아이들이

말도 안 되는 사고로

말도 안 되는 대응으로

말도 안 되는 기다림 속에서

천 개의 바람이 되고 나비가 되고 리본이 되고 팔찌가 되고 풍등이 되고 종이배가 되어

아직도 물속이다

 

아직도 세월네월이다

왜 침몰사고는 일어났는지

왜 선내에 대기하라고 방송했는지

해경은 왜 구할 수 있는데도 구하지 않았는지

도대체 왜 CCTV 영상은 바꿔치기 했는지

사고 발생 어언 5년이 흘러갔는데도

사고 발생 무려 1,825일이 지났는데도

우리 아이들이 아프다, 원통하다, 미안하다

 

누구는

아직도 세월호냐고

아직도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이냐고

그것, 다 끝난 것 아니냐고 지겹다고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아프다 원통하다 미안하다

 

아직도 물속인데

아직도 오리무중인데

아직도 진실은 인양 중인데

내일의 아이들을 위하여

내일의 세월호를 위하여

다시는 이런 사고가 일어나서는 아니 되기 때문에

다시는 이런 거짓거리들이 숨어 있어서는 아니 되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아프다 원통하다 미안하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희망이다 생명이다 안전이다

기다림의 버스를 타고 팽목항에서

색 바랜 리본은 멈추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질 않고

우리 아이들은 이제 그만 떠나고자 하나 아직도 세상은 물속이라고

 

 

                   *최기종 시집 만나자(문학들, 2024)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