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월간 '우리詩' 2월호의 시(2)

by 김창집1 2025. 2. 17.

 

 

우산을 접다 목경희

 

 

비바람 거세게 휘몰아치는 어두운 밤

내 한 몸 젖지 않으려 우산을 펼쳤으나

후드득 떨어지는 굵은 빗줄기에

온몸이 가득 젖어 버린다

 

깊은 산은 비를 맞고 울음을 토해 내고

광화문 거리는 촛불의 강물이 흘러넘친다

이제, 내 몸을 지켜 줄 우산은 더 이상 필요 없다

 

우산을 접고, 손을 맞잡고

어둠 속으로 비를 맞으며

당당하게 세상 속으로 나아가리라

비는 그치고, 태양은 다시 떠오를 테니까

 

 


 

별에 바람에 스치운다 박광영

 

 

동주의 서시를 읽는다

화면에 뜬 시행을 보며

혼자만 다르게 읽었다

지금껏 별에 바람이 스치운다로 읽은 것이다

 

별에 바람이 스치든

별이 바람에 스치든

별은 그대로 하늘에 박혀 있고

바람은 지상을 돌아다니며

스쳐 지날 무언가를 찾을 것이다

 

그동안 외웠던 별에서는

자신이 별 자체였고

바람이 온몸을 흔들며 지나갔단다

 

꽉 찬 달이 걸려 있는 밤,

막다른 골목에 접어든다

 

은하수의 투명한 강바닥에 놓인

무한의 빛 알갱이들

틈틈마다 새어나오는 바람을 맞으며

묵묵히 서 있다

 

 


 

지리산 둘레길의 발자국 - 백수인

     -백운동 계곡에서 남명 조식을 만나다

 

 

발자국을 찍는다

낙엽 위에도

돌계단 위에도

참나무 굵은 뿌리 위에도

깊고 확실하게 발자국을 찍는다

 

백운동 계곡 흐르는 차디찬 물줄기

그 곁에 앞선 발자국들이 무수히 찍혀 있다

뚜렷하게 찍힌 발자국 안에는

남쪽 바다로 날아가던 붕새의 날갯짓이 파닥거린다

수많은 낙엽이 쌓였다가 날아가고

시간을 등에 업고 천왕봉을 넘어오던 바람이 고여 있다

경의검敬義劍을 허리에 차고 마음과 행동을 다스리던

그 맑은 눈동자가 보인다

 

나도 발자국을 찍는다

내 작은 발자국 안에

시가 고이고

구름이 흐르고

작은 새들 지저귀는 소리 내려앉는다

 

 

 

 

고쳐 얹다 성숙옥

 

 

여린 햇살을 따라

강물이 얼고 풀리는 시간

목련 나뭇가지는

봄이 오는 쪽으로 꽃망울 부풀린다

나는 지난 뻐꾸기와 꽃들이 눈에 밟혀

뿌리를 닮은 가지에 매달아 보는데

물기 없는 내 생각들은

바닥의 나뭇잎처럼 바스러지고

쓸쓸한 노래는 얼음에 갇힌 마음을 헤집는다

문득

구름이 삼킨 하늘 사이

푸른 길의 파장을 건네는

전나무에 이런 나를 고쳐 얹는다

이렇게 무채색의 시간들이 바람에 쓸려가는 날엔

멀리서 오는 노란 봄을

찾아 나비처럼 훨훨 날아가 볼까나

 

 


 

별밤 신호철

 

 

  머무르고 싶은 곳에 머무르고, 쉬고 싶은 곳에 자리를 펴네요 그곳이 어디든지 별이 아름다운 곳에 살고 싶어요 이층 다락방에 누워 쏟아져 내리는 별들을 보며 별빛에 기대어 살다 보면 인생의 날이 저물겠지요 밀려오고 밀려가는 파도 따라 얼마나 멀리 갔던지 하늘과 수평선 맞닿아 검은 프러시안 블루로 변해갈 때 시간은 별밤을 멈추었다오

  살아간다는 것 비밀스러운 문들을 열어가는, 숨겨진 나와 얼굴을 마주하는, 한 걸음 다가가지만 서먹해지는, 별빛이 그리운 날, 뼈저리게 그리운 날이오 나도 모르는 발걸음은 호수로 향하고 살아간다는 것 슬프지만도 그렇다고 행복에 겨워 사는 것은 더욱 아닌 것이오 삶을 시로 바꾸어 살고 싶은 사람이 있지요 그런 아름다운 사람이 부러워지는 날이오, 밤하늘 별빛과 함께 다가오는 얼굴 노을 붉어지고 이어 가는 밤하늘 이야기 어둠 속 별빛 아래 마음을 뺏어 가고 있소 별꽃 피고 바람 쉴 새 없어 밤하늘 꽃향기 날라 주는 새벽 향해

  별 꼬리 길게 내리는 움직이는 별밤 멀리 교회당 보이고 사이프러스 나무 눈 맞추는 고흐의 마지막 간절한 손놀림 그 떨림이 느껴지는 밤이오 별꽃 피는 밤하늘 바라보다 잠이 들었나 보오 선루프 두드리는 빗소리에 잠이 깨었소 새벽이 오고 있소 별밤은 내 안에 잊힐 리 없소

 

 

               *월간 우리2월호(통권 제440)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