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나기 마을을 지나며 – 김진숙
누군가를
업어본 사람이면
다 안다
불어난 개울가에
귓불 절로 붉어지다
기꺼이
세상을 업어 건너가던 소년처럼
누군가에게
업혀본 사람이면
다 안다
가슴과 등이 만나 서로가 스며드는 것
그렇게
어두운 세상
등 돌리지 말고
내어줄 일이다
♧ 무사마씸 – 김정애
글을 채 배우기도 전 온몸으로 익힌 말
행간을 읽어내는 말 무사? 무사마씸
때로는 의문과 공감 한데 다 아우르는
우는 아기 달래며 무사? 무사마씸?
몹쓸 행동 나무랄 때 눈빛으로 타일러
짧지만 길고 긴 여운 아픈 속 어루만졌지
묻지도 따지지도 보다 더 엄중한 말
부애가 용심 ᄌᆞ끗디 갈 때 일시 멈춤 하는 말
소멸될 위기의 언어 지켜 낼 따뜻한 말
♧ 거리의 청소부 – 강상돈
전농로에 버려진 이야기를 주웠다
빛바랜 책장 사이로 햇살이 스며들고
얽혀진 사연을 담는 그 손길이 바쁘다
무거운 기억들과 그 잔해를 한데모아
청소하듯 말끔히 주워 담는 이 하루
천천히 그들은 내게 말을 걸어왔다
밤이 깊어 가면 별들은 더욱 반짝이고
눈에는 빛이 되고, 손에는 보석처럼 빛나는
눈물이 고인 거리를 가로질러 걸어갔다
막걸리처럼 쏟아지는 고독의 노래가
마음 깊숙이 스며들어 추억에 감기면
하루의 끝자락에서 어둠을 쓸어 담는다
♧ 눈 – 강애심
어머니 눈동자엔
깊고 깊은 우물이 있다
퍼내고 또 퍼내도
줄지 않는 고팡 같은
날마다 깊어져 가는
그리움의 나이테
♧ 마티스* 의 ‘달팽이’처럼 – 강영미
춤이 별거냐
기어서라도 네게 간다면
나선형 시간을 오린
빨강 파랑 주홍 초록
어머니 색보따리가
강강술래를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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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마티스. 프랑스 화가.
*제주시조시인협회 간 『제주시조』 2024(통권 제33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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