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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애월문학' 2024 제15호의 시(완)

by 김창집1 2025. 2. 28.

 

 

은방울꽃 강상돈

 

 

남국사 가는 길에서 작은 흰 꽃을 만났네

돌담 옆에 다소곳 앉아 고개 숙여 반기던

처음 본 그 눈빛에서 마음이 빼앗기네

 

방울 달린 꽃들이 하나둘 피어나듯

그리운 마음도 점점 더 크게 자라나

햇살이 가득한 봄날, 꽃향기에 취하네

 

암만해도 글렀다는 생각은 버려야지

바람 불면 레몬향이 코끝에 와 닿고

오월엔 순백의 꽃다발을 그대에게 주고 싶다

 

 

 

 

노을 속으로 - 김영란

 

 

진도에 오거든

하루씩 이별을 하자

 

익어가는 홍주 향처럼

붉게 피는 슬픔처럼

 

차라리 이번 생에선

기쁘게 돌아서자

 

저무는 뒷모습은

황홀한 약속 같아

 

기약 없는 인사는

그래, 우리 생략하자

 

눈시울 붉어질 때면

오물락 숨어버리자

 

 


 

토끼섬 김윤숙

 

 

목젖 깊숙이 박힌

 

성가신 형 있는지

 

자꾸만 뒤척이다

 

스륵 잠 든 막냇동생

 

흰 꽃대 밀물녘 저녁

 

지척의 길 놓치다

 

 


 

물외가 쓰다 문순자

 

 

식물은 누가 뭐래도 햇살을 따라간다

감귤밭 한 귀퉁이 물외 수박 애호박

허접한 감귤밭짓거리

천지사방 덩굴손들

 

이름에 물자 수자 들면 보나마나 물푸대다

낮이면 섭씨 34도 열섬 같은 땡볕 아래

서너 번 물조리질론 감당할 재간 없는

 

그래서 그런 건가

조선오이 물외가 쓰다

껍질 벗겨 채로 썬 된장 양념 물외냉국

목 타는 그리움의 농도

몸으로 항변하는

 

 

 

 

구월의 송가 장승심

 

 

여름 가는 출구에서

가을 오는 입구에서

 

들고 나며 짜르르륵

가며 오며 찌르르륵

 

마알간

푸른 하늘을

열고 닫는 환희 송가

 

 


 

족쇄를 풀어줘 장영춘

 

 

오늘도 탈출을 꿈꾼다,

저 문만 나서면

 

푸른 날 성긴 시간 태초의 그 길 따라

긴 목이 닿고 닿도록 하늘 향한 목각 기린

 

창 너머 초록 잎들 마구마구 손 흔들면

아프리카 드넓은 저 질주의 본능으로

 

소나기 맞으러 간다,

겅중겅중 목 빼들고

 

캄캄한 밤하늘에 별빛 총총 수놓으면

코뿔소 작은 샘터에 무리 지어 마중 오겠지

 

마음은 이미 달리고 있어

족쇄를 풀어줘

 

 

         *애월문학회 간 涯月文學2024(통권 제15)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