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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제주시조' 2024 제33호의 글(7)

by 김창집1 2025. 2. 27.

 

 

불귀不歸 - 강영임

     -비양도

 

 

어느 날 날아왔다는 섬

화산탄이 우웅거리고

산자의 뜨거운 얼굴 땀으로 엉겨 붙은

흰 이랑 섬과 섬 사이 그대들 눈빛처럼

 

잎사귀 아래 숨어 다닥다닥 열매 같던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

얼마나 초라했던가

펄랑못 기억의 초승달, 시간이 멈춰선다

 

선착장 오지 않는 이, 말뚝처럼 기다리는 밤

죽은 자 바다로 보내 황근꽃 같은 별이 돋네

여름이 또다시 찾아온다

그대들

어디에 있나

 

 

 

 

 

동자승에 합장 고성기

 

 

부처님 앞에서도

장난치는 동자승과

근엄하게 목탁 치는

주지 스님 염불 소리

보살은

마음 문 열고

누굴 보며 웃을까

 

목탁도 비어 맑고

법고는 왜 부드러운가

범종은 모두 비워도

온 산을 깨워 흔든다

동자승

비울 것도 없어

물빛보다 고운가

 

 


 

도하渡河 - 권영오

 

 

발소리 죽여 네게로 기어들던 밤처럼

밤기차가 빈약한 등을 달고 강을 건넌다

한 번쯤 네 기수에도 흉터가 남길 바랐다

 

비워둔 방에 번져가는 냉기처럼

네 양심이 차갑게 무너지길 바랐다

냉혹한 물결 소리가 가습의 불을 마저 끄는 밤

 

 


 

우리 집 올레로 올래 김대봉

 

 

골목 긴 돌담길 돌아 우리 집 올레로 올래?

 

대문 없고 문패도 없는 마구간 같은 마당귀에

 

가둬둘 망아지 없어 정낭 다 걷어 낸 집

 

 

대문 대신 문패 대신 정당 세 개 걸쳤다가

 

연 삼 년 해 안 걸러 하나, 하나씩 걷어낸 집

 

다 늙은 부부만 사는 올레 긴 집 올레로 올래?

 

 

 

 

두고 온 그림자 김미영

 

 

아마도 이명으로 들렸던 게 분명해

골골마다 묻힌 사연 끊긴 듯 이어지고

머릿속 조각보를 잇다 뜬눈으로 맞은 새벽

 

칼바람 소리 불어온다 그들의 울부짖음

뒤엉킨 이름표는 어느 가슴에 가 닿을까

골령골 산 그림자에 내 그림자를 얹었다

 

 

               *제주시조시인협회 간 제주시조(2024, 33)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