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가 마래터널을 지나는가 – 김연미
초록빛 신호 따라 들어가도 될까요
무단방류된 오염수처럼 한쪽으로 흐르는 역사
예견된 돌발사고에 풀꽃들만 떨어지죠
정면충돌 위험에서 안전지대를 준비해요
중첩된 시공간이 한 점 빛으로 이어지고
흐름이 바뀔 때까지 기다려도 좋아요
암호화된 기억들을 다 해독할 순 없어요
일방통행 같은 행렬 그 시간을 건너서 온
우리는 안전한가요 터널 끝이 여기에요
♧ 애창곡 시대 - 김영기
-봄날은 간다*
원색을 좋아하면 유치원 티 난다 해서
빨강에서 분홍으로 취향이 바뀐 계기
아버지 십팔 번이란 ‘봄날은 간다’였어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어머니 처녀 시절 분홍치마 그랬던가
벚꽃이 사르르 질 때 연분홍에 눈물났어
노래방 내 노래는 너무 뻔한 레퍼토리
전주에 매료되고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이 다 가기 전에 누가 내 손 잡아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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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로원 작사, 박시춘 작곡, 백설희 노래
♧ 노을 속으로 – 김영란
진도에 오거든
하루씩 이별을 하자
익어가는 홍주 향처럼
붉게 피는 슬픔처럼
차라리 이번 생에선
기쁘게 돌아서자
저무는 뒷모습은
황홀한 약속 같아
기약 없는 인사는
그래, 우리 생략하자
눈시울 붉어질 때면
오물락 숨어 버리자
♧ 꼬막의 유언 – 김영숙
-꼬막 일기
한 발 한 발 가라시네
한결같이 가라시네
네 땀을 믿으라시네
그렇게 사라시네
썰밀물 여자만汝自灣의 시
헛등에 와 새기시네
♧ 사람을 가진다는 것 - 김영순
세상의 모든 꽃잎은 그 중심을 향해 핀다
밥이 먼저라서 꽃에선 멀었던 사람
이제는 꽃이 곱다고 한다
사람이 좋다고 한다
4․3으로 고아 되고 파양 끝엔 더부살이
필생이 대서사시 당근밭 선희 엄마
내력을 알게 될수록 소금기만 쌓여간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곁의 안부 물어오는
사람이 당근꽃을, 당근꽃이 사람을
관계를 가진다는 것은
꽃이라 피우는 일
*제주시조시인협회 간 『제주시조』 (2024, 제33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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