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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월간 '우리詩' 3월호의 시(3)

by 김창집1 2025. 3. 19.

 

 

첫눈 오는 날 정순영

 

 

낙엽이

바스락바스락

마지막 숨을 쉬는 날

 

하늘이 펴신 팔로

함박눈을 펑펑 내리네

 

향기 나는 진주 빛 변산바람꽃 한 송이가

뽀드득뽀드득

내게로 걸어오네

 

하얀 은혜를

소복소복 맞으며

사랑을 거룩하게 찬송하네

 

하늘을 올려다보니

하늘 가득 뽀얗게 찬송이 울리네

 

 


 

줌바 클래스 지소영

 

 

사면 거울에 노출된 속살

땀방울도 탱글탱글

살사 힙합으로 뒹군다

 

서툴러도 유혹 한다

열린 매혹 부끄럼도 잊고

할미꽃도 함박꽃도

당당하다

 

등이 곧다

끊긴 세포 부활시키는 기압

휭기는 긴 금발 백발

혼 절이는 열사들

 

하늘에 없는 별들

그림자도 없다

자유의 꽃잎들 사계절을 잇는다

 

 


 

낯선 꿈 권순자

 

 

한바탕 회오리바람

거리를 휩쓴다

검은 비닐봉지가 까마귀처럼 날고

검은 커피 캔이 몸살난 듯 굴러댄다

바람이 스치는 것들이

구름처럼 피어오른다

 

어둠이 불어닥치고

꽃들이 쓰러진다

 

현기증이 졸음을 몰고 온다

쓰러진 꽃들이 꿈속에서 하얗게 웃으며

싱싱하게 한들거린다

꿈에서도 소용돌이치는 바람

 

꿈자리를 하나씩 디디고 건너가는

꽃들의 붉은 발자국 소리

다시 피고 싶어서 바람의 허리띠를 붙잡고

멍들 때까지 회오리친다

 

 


 

연탄불 김기호

 

 

꽃 뭉치 떨어지는

동지섣달 밤

 

겨울의 임계치가

삽작문을 두드린다

 

지글지글 삼겹살

보글보글 된장찌개

 

그녀를 향한 열정

홍매화처럼 뜨거웠던 적 있었다

 

 


 

쿠키 먹는 시간 김나비

 

 

아이티 아이들은

진흙쿠키를 먹는다는데

 

아무리 먹을 게 없어도 그렇지

어떻게 흙을 먹을까 생각을 하다가도

사람이 뭐는 못먹겠나

극한 배고픔에 처하면 사람도 잡아먹는 판에

까짓 흙쯤이아 하는 마음이 먼지처럼 일어난다

 

햇빛에 구운 동그란 과자를 손에 들고

콧물 범벅된 채 먹는 아이들

진흙쿠키를 먹는 영상과 영상 사이

샤넬 가방 광고가 나오는 건 무슨 우연의 장난일까

 

채널을 확 비벼 끄고 싶은데

CHANNEL에서 N을 빼니 CHANEL이 되는 묘한 조합은

둘이 한 통속 아닌가 하는 발칙한 상상을 하게 하는데

 

피난 가냐? 짐 쌀 일 있어? 왜 여자들은 가방을 그렇게 좋아해?”

어떤 남자의 목소리가 귓전에 맴돌아

피식 헛웃음이 나오는 밤

 

저 가방 하나면 쿠키를 얼마나 살 수 있을까

가만히 머릿속으로 굴려봐도 답이 나오지 않고

카리브해 시푸른 파도 소리만 철썩철썩 가슴을 긋는 밤이다

 

 

              * 월간 우리3월호(통권 제441)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