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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김수열 시집 '날혼'의 시(1)

by 김창집1 2025. 3. 20.

 

 

시인의 말

 

 

이순 지나 고희에 오르는 동안

어머니 가시고, 장인 장모님도 가셨다.

 

그리고 새로 가족이 된

손녀 리안의 앞날에 늘 건강과 웃음이 함께 했으면 좋겠다.

 

 


 

대련(對聯)

 

 

고희 넘긴 촌로가 이르기를

최고의 음식은

두부와 오이와 생강과 나물이며

최상의 모임은

아비와 어미, 아들과 딸 그리고

손자들이라 말하니

 

고희 앞둔 중늙은이가 되받기를

최고의 음식은

마른 두부와 물외와 된장과 막걸리

최상의 모임은

아내와 나 그리고 나이를 잊은

술벗들이라 답한다

 

촌로는 섬이 모질다 하는데

중늙은이는 섬이 어질다 한다

 

 


 

오늘 하루

 

 

아무리

 

소리 질러도

 

뭐라 하지 않는

 

바다가 있어

 

그를 껴안은

 

노을이 있어

 

오늘 하루

 

그래도

 

살았다

 

 


 

버섯을 애도함

 

 

울울한 숲길에 들어

아름드리 소나무 그늘 지나는데

저 만치 달걀 반쪽 같은 버섯 하나 언뜻 눈에 들어

솔가지 걷어내고 휴대폰 들이대는데

 

,

버섯 모가지

그만 톡, 부러지고 만다

, ,

못 본 척 안 그런 척 잔가지 덮고

두리번두리번 자리에서 일어나

가던 길 재촉하는데

 

이름도 모르면서

먹는 건지 못 먹는 건지도 모르면서

괜한 서툰바치

소나무 위 까마귀가 지켜보는 것도 모르고

 

, ,

시침만 떼고 간다

 

 

*실상사


 

운봉에서

 

 

주천에서 지리산 장길 너머

한때 해방구였던 예까지 오다

 

간밤 꿈결에

앞서간 벗 설핏 다녀가고

 

첫닭 울음에

바람 자고 비 그치니

동천은 고고하고 청정하다

 

묏등에 구름 걷히었으니

신발끈 매라 한다

 

실상사 풍경 멀고 맑으니

길 나서라 한다

 

 

                             *김수열 시집 날혼(삶창, 2025)에서

 

 

*남원 만인의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