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의 말
이순 지나 고희에 오르는 동안
어머니 가시고, 장인 장모님도 가셨다.
그리고 새로 가족이 된
손녀 리안의 앞날에 늘 건강과 웃음이 함께 했으면 좋겠다.
♧ 대련(對聯)
고희 넘긴 촌로가 이르기를
최고의 음식은
두부와 오이와 생강과 나물이며
최상의 모임은
아비와 어미, 아들과 딸 그리고
손자들이라 말하니
고희 앞둔 중늙은이가 되받기를
최고의 음식은
마른 두부와 물외와 된장과 막걸리
최상의 모임은
아내와 나 그리고 나이를 잊은
술벗들이라 답한다
촌로는 섬이 모질다 하는데
중늙은이는 섬이 어질다 한다
♧ 오늘 하루
아무리
소리 질러도
뭐라 하지 않는
바다가 있어
그를 껴안은
노을이 있어
오늘 하루
그래도
살았다
♧ 버섯을 애도함
울울한 숲길에 들어
아름드리 소나무 그늘 지나는데
저 만치 달걀 반쪽 같은 버섯 하나 언뜻 눈에 들어
솔가지 걷어내고 휴대폰 들이대는데
아,
버섯 모가지
그만 톡, 부러지고 만다
흠, 흠,
못 본 척 안 그런 척 잔가지 덮고
두리번두리번 자리에서 일어나
가던 길 재촉하는데
이름도 모르면서
먹는 건지 못 먹는 건지도 모르면서
괜한 서툰바치
소나무 위 까마귀가 지켜보는 것도 모르고
흠, 흠,
시침만 떼고 간다
♧ 운봉에서
주천에서 지리산 장길 너머
한때 해방구였던 예까지 오다
간밤 꿈결에
앞서간 벗 설핏 다녀가고
첫닭 울음에
바람 자고 비 그치니
동천은 고고하고 청정하다
묏등에 구름 걷히었으니
신발끈 매라 한다
실상사 풍경 멀고 맑으니
길 나서라 한다
*김수열 시집 『날혼』(삶창, 2025)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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