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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계간 '제주작가' 2025 봄호의 시(1)

by 김창집1 2025. 4. 26.

 

 

이제 오십디가 강덕환

 

 

산이 높아 못 옵디가

물이 깊어 못 옵디가

비행기로 한 시간이면

너끈하게 오고도 남을 거리를

햇수로 일흔다섯 해

날수로 이만 칠천 날

시간으로 육십 오만 칠천 시간

 

돌고 돌아, 넘고 넘어

이제사, 오십니가?

훈 줌, 신 ᄒᆞᆫ 배 내줬고랜

포승 채워 끌려간 길

낯선 땅 어느 골짜기에 웅크려

아무도 돌봐드리지 못했던

옹이 진 세월

 

한숨은 태평양을 일렁이는 바람으로 불고

눈물은 산천초목 적시는 비로 내렸습니다

넋은 구천을 떠돌다 밤하늘별이 되고

한 줌 유해로 남았다가

이제사 고향땅에 찾아오셨으니

 

이레 오십서

안자리로 앉으십서

아직도 오지 못해

ᄇᆞ름질, 구름질에 떠도는

영혼 영신님네 ᄒᆞᆫ디덜 오십서

지극한 정성으로 향을 사르오니

아흔아홉골 골머리오름

그 너머 한라산까지

청나비로 훨훨 날아오르십서

이제라도 와줜 고맙수다

막 고맙수다,

 

 


 

어느 청년의 고독사 강동완

 

 

방안은 얼음동굴처럼 차가웠다

거미줄이 보라색 커튼처럼 펼쳐있었다

그의 방은 빛이 들어오지 않는 깊은 심해 같았다

나는 유품정리사다

향 하나를 피우고 술잔을 따르고

죽은 청년은 빛이 살갗에 닿은 것을 제일 싫어했다

사체 썩은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그날은 붉은 비가 떨어지고 있었다

그가 누웠던 이불은 핏물로 얼룩져 있었다

이불속에 숨어 있던 나비 한 마리가 창밖을 나가지 못해

이리저리 문에 부딪히고 있다

나는 창문을 열어주었다 어떤 영혼이 하안 연기처럼 창밖으로 사라졌다

그가 죽은 옆자리에는 켜지지 않는 라이터와 피다만 담배 한 갑 있었다

나중에 이곳에 다시 오니 그것들은 햇살과 꽃으로 변해 있었다

그는 아무도 찾지 않는 섬 같았다

지하도의 노숙자처럼 찢겨진 폐지 속에 아픈 영혼을 숨긴 바위섬입니다

아무도 그를 쳐다보지 않았고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

그에게는 자기를 위해 울어줄 그림자마저 없었다

그의 푸른 노트엔 경비 한 명, 미화원 한 명

천국 아파트에서 사람 구함이라는 메모가 적혀 있었다

찬장 속엔 먹다 만 햇반과 유통기한 지난 사발면이 덩그러니 있었다

잘린 손가락이 햇반 위에 놓여 있다

그는 배고픔이 밀려올 때마다 손가락을 잘랐다

영원히 배고픔을 느끼지 않기 위해 착한 쥐들과 찬송가를 불렀다

 

냉장고는 오래전부터 전기가 끊어져 있었다

그는 냉장고 안에 구두를 숨겨놓는 오래된 습관이 있었다

지친 영혼이 몸을 버리고 어둠 속으로 사라질까봐

청년은 그때부터 죽음을 예감했을까

그의 지갑 속엔 만 원짜리 지폐 한 장과 어머니의 빛바랜

사진 한 장 있었다

먼저 가신 어머니의 영혼이 찾아와 죽은 아들을 데려간다

아들아 고 생 했 어

 

 


 

동백 강봉수

 

 

겨울에 피는 꽃

그 붉은 품으로

눈이 내린다

 

바람타고 훨훨

가신 님 그 길 위로

하안 눈이 내린다

 

조들지 말앙 일 봠시라, 곧 오켜

바람 같은 언약 남겨두고

툭 툭 떨구어진 목숨들

저리 애타게 피는데

함박눈은 저 리도 폭폭 내려

온 세상을 하얗게 하얗게 덮고 덮는 것이다

 

 


 

이제야 왔습니다 - 김경훈

    -동학농민연맹 원평 구미란 전투 희생자 추모문화제에 부쳐

 

 

이제야 왔습니다

이제야 여기 구미란 무덤가에 왔습니다

제주도에서 왔습니다

몰랐습니다

너무 늦게 왔습니다

이제 여기서 무릎 꿇고 사죄합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찾겠습니다

이름 없는 무덤이라고 들었습니다

제주도에 있는 방치된 43유격대의 무덤

속냉이골과 같은 곳이라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름 없는 꽃이 없듯이

이름 없는 무덤도 없습니다

당신들은 모두 고귀한 꽃이고

당신들은 모두 전봉준이고 김개남입니다

당신들은 모두 윤봉길이고 홍범도입니다

당신들은 모두 이덕구이고 문성필입니다

당신들은 모두 김지회 이고 지창수입니다

당신들은 모두 이현상이고 방준표입니다

당신들은 모두 김주열이고

당신들은 모두 전태일입니다

당신들은 모두 윤상원이고

당신들은 모두 박종철이고 이한열입니다

당신들은 모두 이경해이고 백남기입니다

당신들은 모두 죽창이고

당신들은 모두 횃불입니다

당신들은 모두 촛불이고 응원봉입니다

당신들이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당신들의 항쟁은 우리들 몸속에 유전되고

당신들의 정신은 우리들 마음속에 타오릅니다

당신들은 모두 우리들의 하늘입니다

이제 우리가 받아 안겠습니다

당신들이 이끈 그 혁명의 역사

그 찬란한 개벽의 투혼을 간직하고 떨치겠습니다

 

영령들이시여

우리에게 격려의 죽비와 분발의 채찍을 내리십시오

 

 


 

햇살 밥 김광렬

 

 

어느 오일장터 옆 작은 국밥집 들러

혼자 국밥과 막걸리 시켜먹고

막 문을 나서는데

들어갈 때는 안 보이던 민들레꽃들이

나올 때는 앞뜰 한 모퉁이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밥을 먹고 있다

누가 지어주었나?

꽃샘추위 속 그늘진 곳에

반짝 돋아난 저 따뜻한 햇살 밥,

달그락달그락

파먹는 밥이 참 맛있겠다

나도 가족끼리 오순도순 둘러 앉아

오붓하니 밥 한 끼 하고 싶다

이 아픈 시국에 당신들은 평안한가?

 

 

 

                            * 계간 제주작가2025 봄호 (통권 제88)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