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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조한일 시집 '낮은말 받아쓰기'의 시(1)

by 김창집1 2025. 4. 28.

 

 

시인의 말

 

 

말하자면

하류에 흘러가는

물의 언어를

해독하는 일이었다.

 

 

          20254

 

                  조한일

 

 


 

도서관에서 추사를 만나다

 

 

자가격리 6개월 리모델링한 도심 도서관

낯설어진 자료실에서 홀로 길 잃었다가

봉은사 판전板殿을 쓰는

추사 선생 만났다

 

원악도遠惡島 제주심 유배 해배된 지 백팔십 년

새 서가에 등 돌려 앉은 그를 본 사람 드물어

김정희검색하고서

겨우 닿은 그의 거처

 

콘크리트 위리안치 도서관은 책 유배지다

부동의 위병들처럼 몇 년을 꽂혀 있어도

아무도 찾지 않으면

경직되는 책의 관절

 

 


 

별점 테러

 

 

별들이 사라지고 후기는 난장亂場이다

펜션을 파괴하고 카페를 폭파하는

대중들 집중포화에 현장은 화끈하다

 

21세기 신기전神機箭에 두 손 두 발 다 드는

속수무책 테러 현장 고객의 거리 두기

진위를 확인하는 건 의미 없는 뒷북이다

 

진화하는 군중이 남겨놓은 고작 별 하나

낙인의 수단으로 목표물이 함락된다

별들을 손안에 넣는 소비 지향 테러리스트

 

 


 

종이사전

 

 

정원 초과 서재를 정리하는 늦봄 아침

지붕처럼 먼지 쌓인 다세대 책들 사이

빛바랜 국어사전에 손댄 게 언제였나

 

시집들 틈 박힌 돌 같은 영어사전 낡은 옥편

빠르고 편한 인터넷 사전 수고는 삭제돼도

모르는 단어를 찾던 유목의 낙타는 없다

 

검색하고 클릭하면 삼시에 번식한다

유의어 동음이의어 예문들의 산란장

종이는 나무의 예문이다 네가 내게 그렇듯

 

 


 

저녁의 행위

 

 

기울어진 운동장이 술병을 따는 저녁

하는 외마디 뱉고 입 다물고 멈칫하기

세상을 액체로 시는

내 방어술은 실전이다

 

숨 막혀 가슴 저려 밀폐에서 꿈꾸다

철문이 열린 순간 입 막고 소스라친

날 누가 끄집어내어

한턱내면 좋은 날

 

뒤집으면 바닥 파고 흔들면 벽 긁으며

눈 딱 감고 열어젖힌 술자리 파할 무렵

독주에 취한 저녁이

계산하고 먼저 간다

 

 

                   *조한일 시집 낮은말 받아쓰기(가히, 2025)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