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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김영란 시집 '동백 졌다 하지 마라'의 시(1)

by 김창집1 2025. 4. 27.

 

 

서시 - 나무의 시

 

 

생각대로 산다는 건

쉽지만은 않았어요

 

머리와 가슴이

엇갈린 그 길 위로

 

바람이

기척할 때마다

 

휘청이는

당신과 나

 

 

 

 

손톱달 안부

 

 

1

 

슬픔이 달처럼 내려앉고 있었어

 

어둠의 안쪽으로 얼굴 없는 사람들이

찢기고 피 흘리며 바닥을 긁고 있어

저 비좁은 돌 틈에 무슨 뜻으로 꽃은 폈나

오래 머물기엔 어둡고 깊은 동굴

빛도 새소리도 초목들도 다 어두운

은밀한 그 시간이 지켜보고 있었지

생솔가지 연기가 목을 가만 조여 왔어

손톱이 빠지도록 안부를 기록했지

하도리 물새들아 종달리 똥깅이야

다음 봄을 기다릴 수 있을지 몰라

 

야비한 인사말처럼 동굴 문이 닫혔거든

 

 

2

 

  죽음보다 더 깊이 숨고만 싶었을까 관 뚜껑 열 듯이 비집고 들어간 굴엔 할퀴어진 꿈들이 나뒹굴고 있었어 아홉 살 조카야 아시야 형님아 아이고 아주망아 삼춘님 무슨 일이꽈 항아리 가마솥 질그릇 물허벅 곡괭이 도끼 요강에 솥뚜껑 구덕 안경 허리띠까지 아우성 치고 있었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가슴에 묻고 울었을 뿐

 

 


 

3

 

눈이 퉁퉁 부은 채로 사십 년에 또 몇 년

 

고스란히 묻어놓고 흘러갈 줄 알았지

세상 문 열리듯이 동굴 문이 열렸을 때

앙상한 뼛조각에 달려드는 햇살들

근거도 흔적도 없이 빛나지나 말 일이지

열한 개 빈 관들은 헛묘로 떠났을까

곡소리도 죄가 될까 숨죽여 울던 바다

그 바다 한가운데 흩뿌려진 넋들이

 

단 한 번 거르지 않고 손톱달로 뜬 거 봐

 

 



어떤 추도사

    -비전향 장기수 고성화 선생 추모제에서

 

 

혁명가의 무덤은

 

땅속이 아니다

 

우리들 심장에

 

깊숙이 묻는 거다

 

아이들 떠드는 소리,

 

저게 곧

 

추모다

 

 


 

게메마심*

 

 

섬에선 나무들도 바람의 눈치를 본다

 

머리채 잡혀 끌려가던 북촌마을 머귀나무도

 

인지 아니오인지 끝내 답을 못 했나

 

직립을 포기하고 엉거주춤 서 있는 거 봐

 

무자년 섬사람들의 생존의 그 화법처럼

 

쉽사리 꺼내지 못한 채 맴돌고만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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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쎄요의 제주어.

 

 

                   * 김영란 시집 동백 졌다 하지 마라(한그루, 2025)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