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서시 - 나무의 시
생각대로 산다는 건
쉽지만은 않았어요
머리와 가슴이
엇갈린 그 길 위로
바람이
기척할 때마다
휘청이는
당신과 나

♧ 손톱달 안부
1
슬픔이 달처럼 내려앉고 있었어
어둠의 안쪽으로 얼굴 없는 사람들이
찢기고 피 흘리며 바닥을 긁고 있어
저 비좁은 돌 틈에 무슨 뜻으로 꽃은 폈나
오래 머물기엔 어둡고 깊은 동굴
빛도 새소리도 초목들도 다 어두운
은밀한 그 시간이 지켜보고 있었지
생솔가지 연기가 목을 가만 조여 왔어
손톱이 빠지도록 안부를 기록했지
하도리 물새들아 종달리 똥깅이야
다음 봄을 기다릴 수 있을지 몰라
야비한 인사말처럼 동굴 문이 닫혔거든
2
죽음보다 더 깊이 숨고만 싶었을까 관 뚜껑 열 듯이 비집고 들어간 굴엔 할퀴어진 꿈들이 나뒹굴고 있었어 아홉 살 조카야 아시야 형님아 아이고 아주망아 삼춘님 무슨 일이꽈 항아리 가마솥 질그릇 물허벅 곡괭이 도끼 요강에 솥뚜껑 구덕 안경 허리띠까지 아우성 치고 있었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가슴에 묻고 울었을 뿐

3
눈이 퉁퉁 부은 채로 사십 년에 또 몇 년
고스란히 묻어놓고 흘러갈 줄 알았지
세상 문 열리듯이 동굴 문이 열렸을 때
앙상한 뼛조각에 달려드는 햇살들
근거도 흔적도 없이 빛나지나 말 일이지
열한 개 빈 관들은 헛묘로 떠났을까
곡소리도 죄가 될까 숨죽여 울던 바다
그 바다 한가운데 흩뿌려진 넋들이
단 한 번 거르지 않고 손톱달로 뜬 거 봐

♧ 어떤 추도사
-비전향 장기수 故고성화 선생 추모제에서
혁명가의 무덤은
땅속이 아니다
우리들 심장에
깊숙이 묻는 거다
아이들 떠드는 소리,
저게 곧
추모다

♧ 게메마심*
섬에선 나무들도 바람의 눈치를 본다
머리채 잡혀 끌려가던 북촌마을 머귀나무도
“예”인지 “아니오”인지 끝내 답을 못 했나
직립을 포기하고 엉거주춤 서 있는 거 봐
무자년 섬사람들의 생존의 그 화법처럼
쉽사리 꺼내지 못한 채 맴돌고만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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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쎄요’의 제주어.
* 김영란 시집 『동백 졌다 하지 마라』 (한그루, 2025)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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