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것을 보여주고 싶은 밭담길
버스를 타고 번영로(97번)로 성읍을 지나면 ‘신풍 입구’ 정류소가 나타난다. 터미널에서 약 50분 거리다. 횡단보도를 건너 마을 입구에서 고성환류정류장 가는 722-1번 버스가 있지만 간격이 너무 길어 그냥 걷는다. 칸나와 베르가못 같은 예쁜 꽃이 피어 있기도 하고, 멋진 종려나무가 모여 있는 곳도 있다.
‘어멍아방 밭담길’은 이름도 특이하지만, 코스를 살펴보면 신풍리가 보여주고 싶은 곳을 모두 연결한 길이다. 하긴 마을 구조가 원래 있던 동네를 제외하곤 밭 중간 중간에 집이 하나씩 있거나, 새로 짓기도 하여서 밭만 길게 이어진 곳은 안 보인다. 더구나 천미천이 마을을 따라 흐르는 구조다 보니, 달리 밭담길이라 하여 뚝 떼어내기도 힘들겠다.
□ 문인이 많은 동네
얼마 안가 넓은 천미천에 놓인 신풍교를 건너니, 감밭[柿田] 김공천(金功千) 선생의 시비를 만난다. 이 마을 출신으로 일본에서 대학을 나와 해방 후 제주교육 현장에서 힘을 쓰신 선생은 1982년 ‘시조문학’으로 등단하여 제주시조의 주춧돌을 놓으셨다. 2010년 봄 신풍리에서 세운 ‘고향’이란 시에 자구마다 고향 사랑이 묻어난다.
‘서울 어느 거리에서/ 누가 고향을 물으면 나는,// 제주라 대답하고/ 신풍리 초가(草家) 그리워진다// 귓전엔 우렁찬 냇소리/ 눈엔 삼삼 진달래 꽃’ - 시 ‘고향(故鄕)’에서
뒤에 안 사실이지만 신풍리에는 노인들이 ‘가법(家法)은 흥학(興學)과 무농(務農)이라사 호주’라 즐겨 말한다. 즉, ‘집 살림을 하여 나가는 데는 교육에 힘쓰고 농사에 부지런 하라’는 뜻이다. 그래서인지 예부터 문인과 학자가 많다. 오진조, 오익효, 오장헌, 김종림, 김공천 등의 시인과 강재량, 강우용, 김문철, 김동철, 오문복씨 등 학자들을 꼽을 수 있다.
□ 어멍아방 밭담길
출발점에는 여러 가지가 모여 섰다. 우선 간판 팻말엔 ‘농촌 食(식) 체험마을 -향토음식’과 ‘어멍아방 잔치마을’을 내걸었다. 방앗간을 옮겨다 새로 짓고 옆에 밭담길 내용과 지도를 보여준다. 마을로 난 밭담길은 3.2km에 약 50분이 소요된다.
‘어멍아방 잔치마을’은 신풍리에 온전히 남아 있는 전통문화와 자연환경을 살린 농촌체험마을로 토종 돼지우리, 초가집, 혼례장 등 체험시설을 잘 갖추고 있다. 체험 종목으로는 감귤 수확, 보말수제비 만들기, 집줄 놓기, 승마 체험, 천연염색, 빙떡 만들기 체험 등이다.
□ 팜 스테이로 변한 신풍분교 터
‘배움의 옛터’ 표지석에는 ‘이곳은 남제주군 성산읍 신풍리 500번지로서 풍천초등학교 신풍분교장 배움의 옛터입니다. 학구민의 불타는 교육열과 정성으로 1970년 3월 6일 개교한 후 26년 간 394명의 어린이들이 푸른 꿈을 키우며 배움의 꽃을 피우다가 어린이가 줄어, 1996년 3월 1일에 문을 닫으며 풍천초등학교에 통합되었습니다. 이에 이곳이 오랫동안 배움의 불을 밝혔던 자리임을 길이 알리기 위하여 이 비를 세웁니다. 1996년 3월 1일 풍천초등학교장’이라 새겼다.
교실은 깨끗이 치워 팜 스테이로 운영되고, 뒤쪽으로 안내된 길을 따라가면 새로 조성된 조그만 연못과 면암 최익현(崔益鉉) 선생이 지나간 사연을 새긴 ‘도운대(道韻臺)’와 오래된 신당(神堂)이 있다.
□ 정겨운 우영팟의 풍경
그곳을 나서면 온통 초록이다. 감귤과수원이 보이고 콩밭도 나타난다. 그리고는 다시 동네가 나타나고, 팽나무 정자도 섰다. 그래서 밭담은 울담도 되고 허물어 마당으로 통하기도 한다. 나무는 집주인 성향대로 감나무도 심고, 무화과도 심어 정원으로 꾸몄다.
큰길에서 신풍사거리 정류소가 나타나고, 다시 골목길로 접어든다. 오래된 동네가 말해주듯 대나무와 우영팟이 이어진다. 주위를 둘러 온통 초록색 나무 사이로 흘러나오는 새소리에 발을 멈추니, 녹슬어가는 경운기 뒤로 새로 심은 고구마 줄기가 줄을 뻗치고, 콩잎도 따먹을 만큼 자랐다.
□ 창침정을 지나며
그곳을 지나 천미천과 마주한다. 천미천(川尾川)은 한라산 바로 밑 흙붉은오름과 돌오름에서 발원하여 송당리 대천동을 돌아 성읍리를 거쳐 하천리 바닷가에 이르는 40.6km의 하천이다. 이곳 마을 옛 이름이 ‘내깍’ 또는 ‘웃내깍’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밭담길은 이 내를 만나 오른쪽으로 제방, 왼쪽에 밭담을 끼고 나란히 간다.
중간에 마을로 통하는 길가에서 ‘창침정(窓枕亭)’이라는 정자와 만났다. 옆에 돌에 새겨 세운 시비에서 그 내용을 짐작한다. 이곳은 앞내가 흘러넘칠 때 분류가 절정을 이루므로 여러 마을 선비들이 시회를 열어 많은 시작품을 남겼다. 여기서 이 마을 출신 오진조(吳眞祚, 1823~1898) 선생의 묵적을 새긴 돌이 보인다.
그곳에서 걸어 나가 신풍리 화단이소 정류소를 지나 샛길로 나가면 보건진료소와 동네가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면 바로 출발점이다. <계속>
*이 글은 '뉴제주일보'에 연재되고 있는 필자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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