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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길 이야기

성산읍 난산리 '난미밭담길'(4)

by 김창집1 2023. 11. 21.

 

 

아직도 가기 힘든 마을

 

 

  이번 취재를 위해 제주시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성산읍 난산리로 가보니, 차편이 그리 녹록하지 않다. 난산리 가려면 서귀포와 성산을 오가는 295번 버스 편을 이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표선에서 신풍, 삼달, 신천리를 거쳐 갔다가 그 길로 되돌아오거나, 신양을 거쳐 고성리로 나와 제주시와 성산포를 오가는 버스 편으로 돌아와야 했다.

  물론 성산읍 관내를 도는 버스가 있지만 복잡하고 드물다. 이번 표선민속촌으로 가는 번영로를 이용했는데, 대기시간까지 3시간이나 걸렸다. 혹 방문할 일이 있으면 승용차 이용을 권해본다.

난미밭담길이 시작되는 정류소에 내려 복지회관 입구에 나부끼는 2공항 절대반대라는 노란 깃발을 보았을 때야, 비로소 이곳이 요즘 한창 뜨거운 마을이란 걸 새삼 깨닫는다.

 

 

 

 

전형적인 중산간 마을

 

  마을 한가운데 서 있는 다섯 기의 제일동포 공적비가 조용히 지켜보는 마을, 밭담길 안내판엔 해발 50m 고지에 천년의 장구한 역사와 함께 유림촌이 형성되었던,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간직한 고즈넉한 마을이라 했다.

  2.8km45분이 소요된다는 난미밭담길로 들어선다. 안내 표지석 머들이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복지회관 울타리를 왼쪽에 두고 난산로로 출발했다. 집집마다 단정하게 매단 문패의 난초 무늬를 보며, ‘난산(蘭山)’이 떠올랐고 옛 이름이 난미여서 난미밭담길이란 이름이 붙었다는 걸 눈치챘다.

  얼마 안가 익숙한 머들이표지가 보인다. 나지막한 밭담길에는 후박나무 등이 서 있고, 그 위로 개머루와 담쟁이덩굴, 송악들이 자리 잡았다. 열매가 제법 모양을 갖춘 감귤과수원과 텃밭들이 나타난다.

 

 

 

 

올레 제3-A코스와 겹치는 구간

 

 

  마을로 접어들면서 도로가 넓어지고, 새로 지은 집이 하나둘 나타난다. 남산로 41번길에서 눈에 익은 올레길 표지가 보였는데, 온평포구에서 출발하여 통오름과 독자봉, 김영갑갤러리를 거쳐 신풍포구에서 3-B스와 만나는 올레길 3-A코스 표지다.

  게스트하우스 쪽으로는 수도관 공사가 한창이고 골목 어귀엔 조그만 사각정도 보인다. 아무래도 이 산골까지 게스트하우스나 민박집, 카페 바람을 끌고 들어온 것은 올레길이다. 그런데도 새마을운동하면서 개량했던 슬레이트 지붕이 아직도 남아 있다. 슬레이트의 석면이 1급 발암물질이라는데, 저걸 어쩌면 좋을까?

  한겨울을 빨갛게 물들었던 동백나무엔 열매가 실하게 달렸고, 잣담 위 호박도 제법 굵어졌다. 콩잎도 따 먹을 만큼 자랐는데, 귀리는 얼마 없어 수확해야겠다.

 

 

 

 

면의모루는 아담한 공원으로 꾸며

 

 

  얼마 안가 面義(면의)모루란 표석이 세워진 곳이 있어 올라가 보니, 제법 넓은 동산은 풀밭에다 나무를 심어 공원처럼 조성했다. 팔각정을 세우고 곳곳에 벤치도 놓았다. 정자에 올라가 발을 벗고 앉으니, 주변이 환히 드러나 마을경치가 그만이다.

  조금 쉬고 안내 표석을 찾아가 그 내용을 읽어본다. ‘이곳은 성산읍 난산리 1196번지, 면적이 6995인 도유지이다. 면회는 1895년 주민자치 성격의 조직으로 전국적으로 시행되어 대소로 나누어 회의를 치렀는데, 대회는 군리, 중회는 면리, 소회는 리회로 각각 분리했으며, 면회/면의모루는 면 회의를 하였던 동산이다.’

  난산리는 유향 양촌으로 풍헌 4명을 배출하고 좌면의 중심에 위치한 관계로 이곳에 모여 공공적 성격의 사안을 의결하였으며, 집행기관인 집강(執綱)을 선출하고 그에 따른 의견을 나누던 곳이란다. 조금 애매하긴 하나 그 내용을 찾아 밝히려는 정성이 눈물겹다.

 

 

 

 

난산초등학교 터를 지나며

 

 

  면의모루에서 나와 다시 인가로 돌아드니, 공중전화 부스, 재활용 도움센터 같은 시설물들이 보인다. 그리고 학생수가 줄어들어 아랫마을 신산초등학교와 합쳤다는 배움의 옛터가 나타났을 때라야 비로소 이곳 난산리에 내려와 꽃을 가꾸며 산다는 선배 시인이 생각났다.

 

  ‘나는 지날 것이다/ 어질게 잠들어있는/ 중산간 마을의 베개 맡을/ 전설의 열매가 소곤대는/ 아름드리 멀구슬나무 아래를/ 억새꽃 피어 뽀오얀 젖가슴 이룬/ 오름의 능선을/ 아이들 숨바꼭질하던 시골 초등학교/ 사철나무 울타리 곁을/ 밤이슬에 눈시울 적시는/ 들국화 핀 들판을/ 은빛 침 흘리는 초승달에/ 목축이며/ 이 밤에 나는 떠날 것이다/ 그 조용하고 단순한 풍경 속으로/ 나를 기다려 주지 않는 시간을 향하여’        -김순이 시 제주야행濟州夜行 -가을부분

 

  그러고 보니, 나에게 자동차 갖고 다니기를 권하며 행동반경이 사고반경이라 하던 말이 떠올랐다. 그러기에 이곳에 내려와 살면서도 바쁜 자리를 맡아 깔끔하게 일을 처리하고, 올 어느 신문을 보니 성산포노인대학 학장을 맡아 원활하게 이끌고 있다는 전언이다. 그 넓은 오지랖을 어디다 숨기랴. 밭담길은 경로당으로 나와 오른쪽 새마을로 포장기념비를 통해 마을회관으로 돌아올 때까지 계속된다. <계속>

 

    * 이 글과 사진은 뉴제주일보에 연재되고 있는 필자의 '김창집의 길 이야기'의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