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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계간 '제주문학' 2023년 겨울호의 시(1)

by 김창집1 2023. 12. 31.

 

 

이태원 그날 강덕환

 

 

, 조름에서

, 밀지 맙서게

, 지둘라부난

, 오몽을 못허쿠다

, 푸더지쿠다

, 동겼닥

, 놨닥

, 흥글쳐부난

, 가점직허우다

, 아가기여!

, 가사쿠다

, ……

 

 

 

 

 

늘 두려운 것이다 강봉수

 

 

오늘도 그녀를 사랑할 수 있을까

삼십년을 함께 살았는데

설레던 맘도 예전 같지 않고

보기만 해도 절로 웃음이 나던 날들이

희미하다

 

오늘도 그 사람 만날 수 있을까

도시엔 사람들이 가득 차 있는데

모두가 얼굴이 없다

손에 쥔 세상만 쳐다보는 사람들

밥상 앞에 앉은 아들도

얼굴이 없다

 

오늘도 무사할 수 있을까

달리는 자동차와

날마다 땅에 넘치고 바다를 메우는 쓰레기산

보이지 않게 허공을 떠도는 불순의 공기

오늘 무사할 수 있을까

늘 두려운 것이다

 

 

 

 

물웅덩이 - 고영숙

 

 

읽어 내리지 못한 손금이 고요한데 어느 방향에 얼굴을 묻고 있는지

 

백년을 아가미 흔적을 쫓던 달그림자가 깨지고

 

더운 피가 흐르는 양수(羊水)가 흔들리고 열 손가락이 허공으로 차오른다

 

팔딱거리는 붉은 비늘을 긁으면 갓 핀 피 한 방울이 물결을 일으키고

 

젖몸살로 불어나는 물살, 멈칫거리다 채 마르지 않은 붉은 탯줄이 건너간다

 

물살은 흐르라고 강을 만들었지만

 

익녀(溺女)*, 그릇 아래는 절벽이란다

 

웅크린 채 온힘을 다해 열 달 살얼음판을 건너왔지만 홀로 던져진 몸뚱어리

 

물살에 발목이 잡힌 채, 낙인처럼 달빛에 찍힌 채

 

놓친 숨이 애끓어서 말라가는 빈 손톱

 

물 안에서 태어나고, 물 밖에서 태어나지 못한

 

더 이상 흐르지 않는 물속에 뛰어들어 수장된 만월(彎月)

 

---

*익녀(溺女): 중국에서 딸을 낳으면 그릇에 익사(溺死)시키던 관습.

 

 

*강요배 작 '동백꽃 지다' 중에서

 

 

산사람들 - 김경훈

     -2023 한라산 아미봉 43해원상생굿에 부쳐

 

 

배곯아 죽는 사람 없는

낫 놓고 기역 자 모르는 사람 없는

바람 막을 집 한 채 안 가진 자 없는

외래 모리배 없는

검은머리 외국놈 없는

그런 순수 절정의

그런 평등한 인민의 나라를 위해

그런 해방 통일의

그런 자주의 탐라를 지키기 위해

얼어 죽고 굶어 죽고 총 맞아 죽으면서도

혁명을 움켜쥔 사람들

좌절과 체념을 딛고 오직 분노로

숯불처럼 투쟁의 불씨를 일군 사람들

의롭게 싸우다 의롭게 죽어간 사람들

역사에도 지워지고 그 흔적만

한라산에 남아 있는 사람들

산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두 번 죽어간 사람들

우리가 애써 다시 이름을 불러야 할

다시 돌아올 사람들

산사람들

한라산의 의인들

통일 조국의 위대한 유공자들

 

 

 

 

노로오름에서 김규중

 

 

눈길을 걷는 거는

먼저 간 사람들의 발자국이 보여서다

 

눈길을 잊지 않은 거는

내 발자국 모양을 자세히 볼 수 있어서다

 

눈길을 다시 가고 싶은 거는

오래된 발자국은 눈보라에 감추고

새 발자국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작가회의 간 제주작가2023년 겨울호(통권 제83)에서

 

 

*동쪽에서 본 노로오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