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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젊은시조문학회 작품집 '빛이 나는 증거품' 9호의 시(1)

by 김창집1 2024. 1. 3.

 

 

           [특집 1] 나는 제주, 너는 여수

 

 

나도 섬이라 김정숙

 

 

슬픔에 뿌릴 묻으면 아름다운 거라

늘 빤짝이다가도 품으면 먹먹한 거라

제주도 그리고 여수

몸을 더듬는 저녁이라

 

민낯이라 살가운 가막한 물빛이라

산인 듯 오름인 듯 이심전심 눈빛이라

묻어둔 역사의 그늘 새어나는 불빛이라

 

내리사랑 치사랑이

내리 반란 치반란이라고

백성을 쥐잡는 데 그만한 총도 없을 거라

모자母子섬 수장한 바다 숨어보는 달빛이라

 

바다가 거울이라

아른대는 섬들이라

느닷없는 소나기 술상을 뒤엎는 거라

밤바다 적시는 가을이라

무자년 그 가을이라

 

 

 

 

남 같지 않아, 여수의 비 김미향

 

 

사람으로 태어난 게 죄라면 우린 유죄

그 시절에 태어난 게 죄라면 우린 유죄

여주와 제주에 산 게 죄라면 우린 유죄

 

눈물이 멈추지 않는 제단에 무릎 꿇고

흔적도 없이 사라진 그들을 호명하다

할 말을 잃은 풀들은 더 큰 소리로 쓰러졌다

 

일란성 쌍둥이가 여수에 있었구나

무죄가 유죄가 되고 유죄가 무죄가 되고

지나는 소나기에도 한기가 얼어붙은

 

침묵 아래로 철커덕 바이크가 지났다

지름길 곁에 두고 먼 길을 돌고 돌아

만성리 위령비 위로

여수의 비

내린다

 

 

 

 

누가 마래터널을 지나는가 - 김연미

 

 

초록빛 신호 따라 들어가도 될까요

 

무단 방류된 오염수처럼 한쪽으로 흐르는 역사

 

예견된 돌발 사고에 풀꽃들만 떨어지죠

 

정면충돌 위험에서 안전지대를 준비해요

 

중첩된 시공간이 한 점 빛으로 이어지고

 

흐름이 바뀔 때가지 기다려도 좋아요

 

암호화된 기억들을 다 해독할 순 없어요

 

일방통행 같은 행렬 그 시간을 건너서 온

 

당신은 안전한가요 터널 끝이 여기에요

 

 

 

 

너와 나, 여기 있네 강영미

      - ‘형제묘에서

 

 

여수, 마래터널 지나 만성리 학살터 넘어

그날과 오늘 사이 여섯 점 말줄임표 사이

나지막 언덕이 되어 너와 나 여기 있네

 

해방이다 만세 부르던 두 팔들이 여기 있네

모두가 잘 사는 나라 그리던 눈들 여기 있네

죽어도 다시 솟자던 풀들처럼 여기 있네

 

동포들 죽일 수 없다던 그 입들이 여기 있네

이 땅은 하나라고 올리던 손 여기 있네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던 발바닥들이 여기 있네

 

눈 감은 하늘을 뱉으며 만조의 손을 내밀었지

차라리 나를 쏴라 천 번 만 번 소리쳤지

시퍼런 어머니 가슴 용골 바다가 여기 있네

 

 

 

 

나를 닮은 여수 신해정

 

 

만성리

너를 알고

가슴앓이 심해졌지

 

낙인의

공포 속에

숨죽이며 살았었지

 

여수와 내 고향 제주, 흉터마저 똑같다

 

 

 

 

노란 등대의 약속 조희

 

 

바다도 할 말을 잃으면 침묵하는 것일까

그라베로 흐르며 숨죽이는 가막만

따따따 빗방울 소리가 그 바다를 깨운다

 

활주로가 부서져도 여전히 식민지다

거머리 피를 빨 듯 감각 없이 다가와

형제섬 너를 향해서 총부리를 겨누란다

 

지킨다는 긴 한 숨 두 숨 물결이 된다는 것

십구 일 저녁 아홉 시 하늘로 부는 비상 나팔

안여*의 노란 등대가 여기에 와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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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여 : 제주 남원 바다 지명

 

 

         *젊은시조문학회 작품집 빛이 나는 증거품통권 제9(2023)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