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시]
♧ 돌하르방 - 강덕환
한번쯤 목청껏 울어보길 했나
걸판지게 어깨춤 들썩여보길 했나
한반도의 남녘 끝 외진 섬 그늘
깍지 못 껴 두 손 비비지 않은 게
목 굳어 머리 조아리지 못한 게
천형으로 남아, 늘 그 자리
요렇게 꼼짝없이 박혀 사는 몸이지만
휘어지거나 비틀리진 않았다
몇 번이던가
품은 주먹으로 내리치고 싶었던 게
툭 불거진 눈망울로 쏘아보고 싶었던 게
아하, 그럴 때마다
속울음 타들어 가슴엔 송송 구멍이 패고
살점 도려내는 풍화로
검버섯 돋은 주름진 세월
그래서일까, 애초부터
가진 것 없었으니
더 이상 빼앗길 것도 없어
따뜻한 이웃들이 있는 알동네에 산다
구석, 구석으로만 내몰리며
쫓기듯 살아가는 그들과 벗하여 산다
♧ 볕뉘 - 안상근
잠시 틈 사이에 머물던 볕뉘
겨울잠에서 깨어나 봄이 되는 것처럼
나에게 묻는다
누구를 위해 잠시 멈춘 때가 있었나
누구를 위해 잠시 뒤를 돌아본 때가 있었는가
잠시 그늘에 미치던 볕뉘
그 자리에 민들레가 피어 있는 것처럼
나에게 대답한다
이제야 내 발아래 밟힌 들꽃을 보았다오
미처 바람에 흔들리는 들꽃은 보지 못했다오
[특집] 문학이 품은 제주의 맛
♧ 비양도 보말죽 – 김순국
한림 앞 비취빛 바다지기 비양도
바위틈에 올망졸망 분홍빛 원뿔 고동
구수한 바다 감칠맛 깊이만큼 엄지 척!
녹아내린 조간대가 큰 파도에 울어댈 때
바위 젖 빨아대며 틈새에서 맘 졸였지
씁쓰름 보말 똥 맛은 세상 오미 다 삼킨 맛.
♧ 자리젓 – 김영란
ᄎᆞᆯ레여 반찬이여
ᄄᆞ로 준비 헐 건 뭐우꽈
우영팟 어랑어랑 부루에 유썹 ᄐᆞᆮ아당
부루 ᄒᆞᆫ 장 유썹 ᄒᆞᆫ 장 그 웃디 ᄑᆞᆺ밥 ᄒᆞᆫ 적 또 그 웃디 쿠싱ᄒᆞᆫ 자리젓,
ᄒᆞᆫ 굴레 ᄀᆞ득여지게 움막움막 먹어 봅서 입매 ᄈᆞ뜬 사름덜도
밥 ᄒᆞᆫ 사발 문짝이우다만 그 내우살 싫어ᄒᆞ는 사름덜도 잇이난
푸달푸달 괴운 쉰다리로 꼭 입 보세붑서
거 ᄒᆞᆫ 사발이문 자리내도 엇어지고 속도 펜안헙니다게
겐디 양,
쿠싱ᄒᆞᆫ 그 맛 알아사
제주사름 아니카마씸
♧ 봄소풍 – 김정자
-명도암에서
지친 삶을 치유하는 4월
나 시인의 텃밭은
사랑으로 키운 나물들이
쉴 틈 없는 봄 햇살 받으며
웃고 있었다
익숙한 농부처럼 이랑 사이사이
채소를 가꾸는 나 시인 부부는
이미 오래된 우산 속 연인이었지
갓 따온 나물 비빔밥은
단숨에 삼켜버린 사랑이었다
몸에 잠겨 있던 묵은 체증이 사라지자
햇살 담은 흙냄새가
꽃향기에 옮겨와
졸졸 따라다닌다
*동백문학회 간 『冬柏』 (이천이십삼년 세 번째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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