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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한수풀문학' 2023 제18호의 시(3)

by 김창집1 2024. 2. 17.

 

 

       [집중조명 김진숙 시인] 자선 대표작

 

 

봄의 설계도

 

 

하마터면 밟을 뻔했다

꽃의 안간힘을

낙엽 이불 끌어당겨 겨울 넘긴 노루귀

살아서 돌아온 사람 그 눈빛이 그럴 거

 

그 환한 눈빛에 그만

무릎 꿇고 앉았다

언 땅을 뚫기 위해 끌어주고 밀어주고

조막손 맞닿은 온기

젖 빨던 힘이 그럴 거

 

언제나 봄의 문장은 꽃이 먼저 쓴다지만

찬바람 오래 머물던 젖은 땅에 닿아 보면

옳거니 박수 소리가

귓바퀴에 감길 거

 

 

 

 

붉은 신발

 

 

넘어진 삶을 일으켜 다시 사는 이 봄날

당신은 돌아왔지만 당신은 여기 없고

바닥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보이는 길들

 

짐승 같은 시간들 바람에 씻겨 보내도

눈물은 그리 쉽게 물러지지 않아서

행불자 묘역에 들어 아버지를 닦는다

 

닦고 또 닦아내는 사월의 문장들은

흩어진 신발을 모아 짝을 맞추는 일

아파라, 동백 꽃송이 누구의 신발이었나

 

 

 

 

미스킴라일락

 

 

들리네요, 화분 속에

또각

또각

하이힐 소리

 

눈물로 피고 지던

기지촌의 꽃밥 한 술

 

미스 킴 혼혈의 언니

라일락이 웃네요

 

 

 

 

못의 기분

 

 

옛 교실 나무 바닥은 온통 못투성이야

꿈에서 깰 때마다 발바닥이 축축해

마음도 헐거워지면

자주 피를 흘리는 법

 

서랍을 열어보면 누군가 뒤돌아보고

헝클어진 낙서장에 녹슨 문장 한 줄

무심코 찔리곤 하지

깊게 박힌 그 겨울

 

모처럼 못처럼 비 오는 그런 날이면

하늘 향해 바로 선다는 못의 기분까지

맥락도 검정도 없이

밤편지를 쓰는 나

 

유리창에 흘러내리는 눈동자를 보세요

언제든 뽑아 쓸 눈물쯤으로 생각하지만

세차게 내리칠수록

완결되는 당신 같아

 

 

 

 

철원의 별

 

 

아마 저 별은

희디흰 뼛조각일 거야

 

서로의 심장을 향해

겨누던 총구일 거야

 

밤이면

몰래 내려와

지뢰 찾던

눈일 거야

 

 

                        *한수풀문학회 간 한수풀문학2023 통권18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