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조명 – 김진숙 시인] 자선 대표작
♧ 봄의 설계도
하마터면 밟을 뻔했다
꽃의 안간힘을
낙엽 이불 끌어당겨 겨울 넘긴 노루귀
살아서 돌아온 사람 그 눈빛이 그럴 거
그 환한 눈빛에 그만
무릎 꿇고 앉았다
언 땅을 뚫기 위해 끌어주고 밀어주고
조막손 맞닿은 온기
젖 빨던 힘이 그럴 거
언제나 봄의 문장은 꽃이 먼저 쓴다지만
찬바람 오래 머물던 젖은 땅에 닿아 보면
옳거니 박수 소리가
귓바퀴에 감길 거
♧ 붉은 신발
넘어진 삶을 일으켜 다시 사는 이 봄날
당신은 돌아왔지만 당신은 여기 없고
바닥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보이는 길들
짐승 같은 시간들 바람에 씻겨 보내도
눈물은 그리 쉽게 물러지지 않아서
행불자 묘역에 들어 아버지를 닦는다
닦고 또 닦아내는 사월의 문장들은
흩어진 신발을 모아 짝을 맞추는 일
아파라, 동백 꽃송이 누구의 신발이었나
♧ 미스킴라일락
들리네요, 화분 속에
또각
또각
하이힐 소리
눈물로 피고 지던
기지촌의 꽃밥 한 술
미스 킴 혼혈의 언니
라일락이 웃네요
♧ 못의 기분
옛 교실 나무 바닥은 온통 못투성이야
꿈에서 깰 때마다 발바닥이 축축해
마음도 헐거워지면
자주 피를 흘리는 법
서랍을 열어보면 누군가 뒤돌아보고
헝클어진 낙서장에 녹슨 문장 한 줄
무심코 찔리곤 하지
깊게 박힌 그 겨울
모처럼 못처럼 비 오는 그런 날이면
하늘 향해 바로 선다는 못의 기분까지
맥락도 검정도 없이
밤편지를 쓰는 나
유리창에 흘러내리는 눈동자를 보세요
언제든 뽑아 쓸 눈물쯤으로 생각하지만
세차게 내리칠수록
완결되는 당신 같아
♧ 철원의 별
아마 저 별은
희디흰 뼛조각일 거야
서로의 심장을 향해
겨누던 총구일 거야
밤이면
몰래 내려와
지뢰 찾던
눈일 거야
*한수풀문학회 간 『한수풀문학』2023 통권18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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