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원 풍경 – 강덕환
코로나 잠잠해지고 날씨가 서늘해지자
삐져나오는 뱃살 어쩌지 못해
근린공원을 찾았다
자전거 페달을 돌리고, 허리를 비틀고
거꾸리를 타며 저마다
익숙한 얼굴들 여전히 열심인데
뭔가 휑하다
실버카에 생수 한 병 싣고
라디오 잔잔히 틀고
느린 걸음으로 트랙을 돌던
여든쯤이나 되었을까
백발이 고왔던 할머니
보이질 않는다, 육지 말을 썼으니
바다 건너 고향에 갔을까
중앙병원에서 나온 장의차도
고향으로 가는 걸까
새벽 그믐달이 희끄무레하다
♧ 빈혈 – 강봉수
두 발로 서기가 힘들다
세상은 나와 같지 않고
나는 세상과 같지 않아서
아니오 해야 할 때 아니오 하고
예 해야 할 때 예 할 수 있는
처방전에 내성이 생겨서일까
머리가 빙빙 돈다
객관식에 답은 사라지고
주관식의 답은 오로지
전임자의 탓이란다
미쳐 돌아간다
구역질이 난다
이태원에서 오송 지하차도에서
수많은 꽃이 압사당하고 물에 잠겨
숨을 잃어도 겸손한 책임자는 없고
다 네 탓이란다
눈앞이 캄캄하다
높고 높은 자리 뺏길까
소신 있게 일하는 사람을
항명죄로 난도질하네
내가 돈 것인지
세상 돈 것인지
오늘도 흔들리며 중심을 잡는다
♧ 울음 나무 – 고영숙
흔적을 지우지 못하는 슬픔을 던진다면 우리의 독백은 용서가 될까
나는 아이들을 기억하는 울음나무
손을 내밀었는데 이미 얼룩진 추억은 다정한 속도로 받아치는 추모가 될까
나를 긋고 간 바람들도 투명한 눈물로 목소리를 낼까, 함부로 넘겨짚은 푸른 멍이 포스트잇으로 이따금 팔락거리는
잊혀 질 권리, 잊을 권리 사이, 거품 모양의 결말은 따뜻하다고 믿었는데
늘 묵인하며 뾰족한 완력을 키워나갔지 아픈 냄새를 틀어막으면 부끄러움이 번져나가는
선 채로 미안한 눈물들이 아직 마르지 않았는데 다정한 손을 뻗은 여기서부턴 나의 우기
슬픈 자세는 내가 새겨 놓은 최선이지만 약속으로 흩어지는 다문 입술은
흘러내려도 나아갔으면 좋겠어
*계간 『제주작가』 2023년 겨울(통권 83호)에서
사진 : 요즘 한창인 변산바람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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