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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서안나 시집 '애월'의 시(5)

by 김창집1 2024. 3. 10.

 

 

애월, 순암 서간(順菴 書簡) 2

    -삼불후(三不朽)

 

 

공자가 자신이 살던 노나라의 이야기를 기록한 것이 춘추이며 이를 좌구명이 해석한 것이 춘추좌전이오

춘추좌전에는 죽어서도 썩지 않는 세 개의 것이 있다 하였지

 

덕을 세우는 입덕과 공을 세우는 입공

마지막이 입언()이라

글과 책을 남겨 그 내용이

후대에도 죽지 않고 썩지 않는다 하였지

 

글을 읽고 글을 써 서책을 엮는 것은

이 글이 진언처럼 물결에 밀려가고 밀려와

하늘을 찢고 땅을 열고

다시 물결로 돌아오는 이치이니

물결은 천의무봉하여

하늘과 땅과 사람을 껴안아

천지인 하나가 되는

스스로 그러하다는 자연의 이치이니

 

살아서 죽어

죽어서 살아 그대에게 닿는

팔만사천 자의 썩지 않는 문장이라

삼불후이니

 

이마에 썩지 않는 눈을 그리고

그 눈을 뜨고 문장으로 물결치시라

 

 

 

 

애월, 나비경첩

 

 

당신은 반만 온다

 

나에게 부딪치지 않는다

 

당신과 나는 다정하지

이 세계를 반으로 나누지

 

내가 밤이라면

당신은 해가 뜨는 방향을 흠모한다

어긋나는 아침은

귀퉁이가 조금 비리다

 

문갑을 열면

당신이 날아오른 자리가 모여 있다

우리는 괴이하게 지쳐간다

 

당신이 열릴 때

저녁은 청동빛 그늘로 접힌다

 

별을 훔치는 밤

왼쪽과 오른쪽은 반만 슬프다

 

왼쪽을 오른쪽으로 겹치면

고요하게

경첩이 피어난다

 

 

 

 

백묵(白墨)

 

 

언제나 청춘일 줄 알았다

독무릎꽝* 아픈 어머니

애월 해변을 걸으며 내게 말했다

 

휘어진 한담해변 돌아가면

어머니 얼굴이 다 눅눅해질 텐데

물 묻은 백묵처럼

조금씩 무너질 텐데

 

한자 사전을 찾아보았다

백묵은

흰 백()

검은 먹을 뜻하는 묵()

 

백묵으로

어머니 이름을

물결에 크게 엥기리면**

다 쓴 뱀이 흘러나온다

 

어머니 안에서

희고 검은 것이 부딪친다

뱀 껍질 같은 것이 만져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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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무릎꽝 : 무릎뼈

** 엥기리다 : 낙서하다

 

 

  *서안나 시집 애월(시인수첩 시인선 079, 2023)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