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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월간 '우리詩' 3월호의 시(1)

by 김창집1 2024. 3. 14.

 

 

몸의 중심 - 정세훈

 

 

몸의 중심으로

마음이 간다

아프지 말라고

어루만진다

 

몸의 중심은

생각하는 뇌가 아니다

숨 쉬는 폐가 아니다

피 끓는 심장이 아니다

 

아픈 곳 !

 

어루만져 주지 않으면

안 되는

상처 난 곳

 

그곳으로

온몸이 움직인다

 

 

 

 

한평생 다 거덜낸다 임보

 

 

텔레비전 쳐다보며 따라 웃다

 

페이스북 뒤적이며 기웃거리다

한 세월 다 거덜낸다

 

이 집에서 이 술 한잔

저 집에서 저 술 한잔

신나게 걸치며 헤롱대다

한 청춘 다 거덜 낸다

 

어떤 자는 돈 찾아,

어떤 자는 사랑 찾아,

또 어떤 자는 벼슬 찾아 어정대다

한평생 다 거덜 낸다

 

나도 시에 걸려

쓸데없이 찾아 헤매다

한 세상 다 거덜 냈다.

 

 

 

 

첫눈 정순영

 

 

아침마다

게으른 수렁에서

 

손잡아

거울 앞에 세우는

 

해맑은 하늘빛 머금은

변산바람꽃을 만나러 나서니

 

하늘이 설레며

첫눈이 내리네

 

내 안에

사륵사륵 쌓이는 은혜

 

하늘 깊은 곳에서

축복의 거룩한 찬송이 들리네

 

 

 

 

자작나무 위인환

 

 

하늘만 보고 살았습니다

몸 부서지고 뼈 드러나도,

강풍에 추락한 별

심장을 후벼 팠습니다

도금된 장식품 같은 위선

한 겹씩 벗을 때마다

부처를 닮아가고 있습니다

앞만 보고 가는 일방통행에

되돌이표는 없습니다

다 버리고 가볍게 살라는

경전 같은 말

자작자작 씹히고 있습니다

 

 

 

 

모란 이동열

 

 

모란이 부풀고 있다

닫힌 푸른 대문

가득히

 

문이 열린다

꽃잎이 떨어진다

 

겨울 꽃 한 바구니 인 어머니

앞치마 빛바랜 빨간 모란에서

겨울 물 냄새가 난다

 

내 손등에 떨어진 모란 씨앗 같은

얼룩을 쓰다듬는다

 

벌써 꽃이 피려고 하네,

한 말씀 던지고 모란잎 같은

손을 가져가신다

 

놓고 가신 오래된

모란이 피고 있다

 

 

                        * 월간 우리20243월호(통권 제429)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