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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월간 '우리詩' 3월호의 시(2)

by 김창집1 2024. 3. 17.

 

 

강 건너 복숭아꽃 이상호

 

 

손 내밀면 멀리서 저녁이 오는 동안

마른기침을 해 대며 바라보는 일이란

터질까 싶을 정도로 긴장을 조성하는 일

 

눈동자가 낱낱이 터지는 능선쯤에

전부인 마음들도 있겠다 싶었는지

아직도 다가오지 못한 고백들을 들었지

 

무작정 저물어야 꽃이 되는 그런 날은

눈썹 하나 눈빛 하나 흔들리지 않았지

발자국 마르지 않는 그런 날만 피기로 했어

 

묵직하고 단단하게 다가오는 그 시간

아스라이 놀란 가슴 움켜쥐고 바라보던

모처럼 가만히 들여다본 눈곱만 한 꽃송이

 

 

 

 

호접란 이인평

 

 

자줏빛 호접란이

어머니께 기쁨을 드려요

새벽 네 시 반

나비처럼 피어난 나의 기도도

어머니의 성심에 안겨

별빛처럼 반짝여요

 

아침이 열리기 전

어머니의 기쁨에 겨운

꿈속 같은 고요 속에서

호접란 꽃잎들처럼

기도의 언어들이 정갈해진 내 마음을

어머니께 드려요

 

 

 

 

하루 - 조성례

 

 

눈 뜨자마자

오늘도 열심히 챙겨 털어 넣는다

 

쓰러지지 않으려고

피가 맑아지라고

밥을 잘 먹으려고

위가 부드러워지라고

거기다 여자로 만들어준다는 신비의 호르몬

뼈가 단단해지라고 칼슘까지

안 움큼의 약을 들여다보면서

언제 끝날까 전쟁의 기간을 점쳐본다

 

내가 그들보다 좀 더 젊었을 때

뜨악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그들의 일상이

내게 그물을 씌우며 덤벼들고 있다

찢어지지도 벗겨지지도 않는

단단한 늘그막, 그늘막

 

헛기침을 적당히 내뱉으며 지나가는

골목길의 저 투명체

 

몇 천 보인가

손목은 열심히 발자국 수를 헤아려보지만

반비례로 다가오는 노란 빛깔의 저 태양

눈이 부시지 않다

 

먹이를 찾는 텃새의

푸드덕거림에 화들짝 깨어나면 또 아침

 

 

                 * 월간 우리20243월호(통권 제429)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