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서안나 시집 '애월'의 시(7)

by 김창집1 2024. 3. 26.

*망주석 모음(돌문화공원에서)

 

 

애월, 앙련(仰蓮)

     -두 일뤠 열나흘 굿

 

 

당신,

사랑에서 달아나거라,

 

당신과 나는 태양을 돌 속에 파묻었다

월계수 잎과 단단한 밤의 가시를 삼키고

 

당신과 나는 눈이 먼 자,

인연에 눈이 멀어

아무것도 아닌 자

 

돌 징을 치고 강림처사 따라

두 일뤠 열나흘 동안

밤낮 돌 속을 걸었지

 

돌 징을 치는 당신은

발뒤꿈치를 자르고

흰 피가 돼라

 

당신에게 고백하지 못하는 마음은

왜 요령소리처럼 아름답고 진중한가

수련은, 마음은, 물결은, 태양은, 약속은, 흰 피는

 

죽은 물고기들은

정성스럽고 캄캄하다

 

당신과 나는 아무것도 아닐 터

당신과 나의 머리카락이 하얗게 센다

 

손과 손을 잡았다면 필시

두 마음은

춤이 될 것이다

 

---

* 앙련(仰蓮) : 무덤 앞 양쪽에 세우는 한 쌍의 돌기둥. 망주석에 피지 않을 듯 피는 연꽃.

* 두 일뤠 열나흘 굿(두이레 열나흘 굿) : 일뤠는 7일이며, 두 일뤠 열나흘 밤낮 치성으로 돌 속에서 강림처사를 따라 떠도는.

 

 

 

 

애월, 전생의 나는

 

 

표범나비는 저승으로 날리고

이승에 능수매화 피우는 나는

 

아바님과 어마님 피를 받아

눈가에 뱀을 키우고

당신 등에 동서남북

칠성별 문신을 새기는 나는

 

이마에 큰 산 올리고

오백장군 서서 죽은 한라산

돌 나비 되어 날아오르는 나는

 

돌 속 열두 문 열어

보살의 다라니를 태우는 나는

 

진흙 묻은 비린 것들 이끌며

돌북을 치는 나는

 

뒤돌아서면 부서지는

돌 속의 사람

전생의 나는

 

 

*사진 솔칵 전영국

 

 

 

용두암 1

 

 

누가

쇠처럼 차가운 밤을

만들려고 했느냐

 

칸이 좁은 노트를 보면

감정은 빈틈이 많이 보인다

 

이 밤은 주인이 없어 목소리가 없다

돌에 피가 돈다면 마음입니까

 

마음이란 구겨지는 것일까 침몰하는 것일까

 

용두암을 오래 쳐다보면

밤의 감정 속에

내가 현무암처럼 부서진다

 

 

                    * 서안나 시집 애월(여우난골, 2023)에서

 

 

*사진 : 구쟁기 김평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