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고사리삼
바람 한 줌 들지 않고
햇살 한 모금 내리지 않는 곶자왈에
키 크고 무성한 잎들이
네게는 캄캄한 밤일 수밖에 없었다
숨비소리 땅속에 콱콱 눌러 박고
애면글면 포자낭엽 만들어
무성에도 자손 일으켜 살만해 가는데
이 무슨 사나운 광풍이란 말인가
도틀굴 묵시묵굴 반못 벵디굴 엉물에
피토하는 주검의 바다를 건너며
이 땅의 시원으로 살고 싶었다
작다고 깔보지 마라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잡풀대기가 아니다
내가 곧 주인이요 역사요 평화다
♧ 중의무릇
봄소식 쫓아서
산자락을 어슬렁거렸다
눈바람 핥고 간 흔적을 뒤적이며
얼음새, 변산바람이 꽃물 흘리던 자리에
별 하나 반짝인다
동방박사를 안내한
베들레헴의 노란별 따라
거친오름 시린 눈가에
죽음을 이겨낸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서
일편단심 노란 별꽃을 띄운다
반짝임이
참 지극하다
♧ 그리움
가버린 세월도 때로는
절절하게
바다를 물들이고
환한 달빛으로 골목을 걸으며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노래를 읽는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참 밉다
죽을 만큼 아리던 애틋함도
그 따스한 얼굴
떼를 쓰듯 데려와 앉혀도
생각과 마음이 달라서
덤덤함에 놀라고
그리움이 무색해진다
어머니,
당신도 나처럼
그렇게 덤덤해지고 있는 것입니까?
* 김순남 시집 『내 생애 아름다운 인연』 (도서출판 각, 2023)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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