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김순남 시집 '내 생애 아름다운 인연'의 시(8)

by 김창집1 2024. 3. 28.

 

 

제주고사리삼

 

 

바람 한 줌 들지 않고

햇살 한 모금 내리지 않는 곶자왈에

키 크고 무성한 잎들이

네게는 캄캄한 밤일 수밖에 없었다

 

숨비소리 땅속에 콱콱 눌러 박고

애면글면 포자낭엽 만들어

무성에도 자손 일으켜 살만해 가는데

 

이 무슨 사나운 광풍이란 말인가

도틀굴 묵시묵굴 반못 벵디굴 엉물에

피토하는 주검의 바다를 건너며

이 땅의 시원으로 살고 싶었다

 

작다고 깔보지 마라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잡풀대기가 아니다

내가 곧 주인이요 역사요 평화다

 

 

 

 

중의무릇

 

 

봄소식 쫓아서

산자락을 어슬렁거렸다

눈바람 핥고 간 흔적을 뒤적이며

얼음새, 변산바람이 꽃물 흘리던 자리에

별 하나 반짝인다

 

동방박사를 안내한

베들레헴의 노란별 따라

거친오름 시린 눈가에

죽음을 이겨낸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서

일편단심 노란 별꽃을 띄운다

반짝임이

참 지극하다

 

 

 

 

그리움

 

 

가버린 세월도 때로는

절절하게

바다를 물들이고

환한 달빛으로 골목을 걸으며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노래를 읽는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참 밉다

죽을 만큼 아리던 애틋함도

그 따스한 얼굴

떼를 쓰듯 데려와 앉혀도

생각과 마음이 달라서

덤덤함에 놀라고

그리움이 무색해진다

어머니,

당신도 나처럼

그렇게 덤덤해지고 있는 것입니까?

 

 

* 김순남 시집 내 생애 아름다운 인연(도서출판 각, 2023)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