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문경수 시집 '틀림없는 내가 될 때까지'의 시(7)

by 김창집1 2024. 4. 2.

 

 

습성

 

 

길바닥에 떨어진 내 나이 또래

오백 원짜리 동전 앞에 멈춰 선다

 

이젠 이런 게 기쁘지가 않아

예전의 내가 아니거든

 

애써 말해 보지만

주울까 말까 누가 먼저 줍진 않겠지

걸음을 떼는 척 발로 짓이긴다

 

학창시절을 줄곧 괴롭혀 온 건

꼭 서너 푼씩 모자라는 애매한 생활비보다도

이런 빈곤에 익숙한 나머지

하잘것없는 것에 깡마른 몸을 움츠려

자발적으로 승복해버리는 습성 아니었나

 

종합상가 유리벽 앞에 엉거주춤 선 나를 마주할 때

짓밟혀도 붙어먹어야 산다 살아남는다

 

바닥에 해진 마음 하나

손으로 훔쳐내려다 놓치자

납작한 새 울음소리가 들린다

 

아무도 안 쳐다보는데

마음은 바퀴를 달고 저만치로

미끄러지듯 도망쳐버리는가

 

나는 항상 몇 걸음 뒤늦게

도착하는 급급한 종종걸음인가

 

 

 

 

58

 

 

꿈에서 만난 아버지

온몸에 산탄총을 쏴

화사한 정원을 만들었습니다.

 

장미 한 송이 꺾어

어머니 가슴에 달아드렸습니다.

 

집을 나올 땐 잊지 않고 자물쇠를 채웠습니다.

 

요란하던 기척은 멀어집니다.

 

빛이 쏟아집니다. 온통 시든 백국뿐입니다.

 

한 다발 뭉쳐 저녁바다에 던졌더니

난분분하는 화환 사이로

 

윤슬에 떠밀려오는

어김없는 아버지

 

 

 

 

애월

 

 

지난겨울을 떠올리던 여름

달리던 버스가 급정거했다. 총성이 뒤미처 울렸다.

 

깨진 유리에 묻은 성에를 닦고 동상 걸린 손을 바다에 담갔다.

 

눈바람에 흩날리는 네가 칼에 찔린 채 웃고 있었다.

 

그대로 두고 싶었는데

종점이었다.

 

 

   

    *문경수 시집 틀림없는 내가 될 때까지(걷는사람 시인선 108, 2024)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