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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김순남 시집 '내 생애 아름다운 인연'의 시(9)

by 김창집1 2024. 4. 3.

 

 

조천 대섬에서

 

 

짙푸른 바다에 하얀 눈이 내리고

괭이갈매기 떼 바람의 옆구리를 간질일 때

어린 고기는 비늘을 털며 뛰어오르곤 합니다

파도만 무심히 왔다가는 바닷가에서

카 오디오에 테이프를 넣고

사이먼 카펑클의 메리워즈 언 온리 차일드를 들으면

희미한 시간의 껍질이

맨몸으로 달려듭니다

살면서 때때로 낫을 갈 듯이

자신을 버리는 일도

지상의 모든 이름들을

사랑하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나는

바다의 물이랑마다

그리운 편지 나르겠습니다

 

 

 

 

변비

 

 

가만 두면

제풀에 미어져 나올 것을

이마에 힘줄이 터져라 용을 쓰다가

일어서면서

에이 시팔,

 

저만치 바삐 걷는 벗의 뒤꿈치에

! 잠깐만 기다립서 외쳤다

 

공중화장실보다 숲이 더

편하게 술술 밀려나오는 것을 보면

나는 필경

어느 들짐승의 후생으로

살고 있는가 보다

 

 

 

 

화단의 잡초

 

 

낮에는 바다의 몸짓을 불러들이고

밤이면 산의 심장소리 떼어다

하늘매발톱 비비추 작약 왕원추리 청국들

꽃물 놓은 자리마다

지하철 좁은 의자에 쩍벌남처럼

잡풀이 돋았다

 

이빨보다 사납게 손톱을 앙다물었다가 문득

이 무슨 억하심정인가

자식도 애물단지인 때가 있는데 싶었다

 

물건 같지 않은 것들이

효자노릇 한다더니

어머나, 꽃을 피웠다

어깨를 내어준 산박하와 돌콩이다

 

화단이 풍성하다

선택받은 종자들 이파리에 흙탕도 없다

이 가을엔 5층 건물 옥상에서

풀벌레들 달빛소나타 들을 수 있겠다

 

 

          *김순남 시집 내 생애 아름다운 인연(도서출판 각 시선 051, 2023)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