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월, 갯괴불주머니
바다를 오래 쳐다보면
내가 무서워진다
나를 이해한다는 당신이 무섭다
애월에서 나는 파란만장을 생각한다
봄밤은 상심으로 가득하고
목 없는 부처처럼 우리는 이미 파탄이다
해변은 누가 묶어둔 코뿔소일까
자꾸 달아나는 갯괴불주머니
당신이 두고 간 질문
슬픔에 가깝다
♧ 작산 사름
멍들거나 흠집 난 사과는 썩으려는 사과
칼로 깎으면 아플 부분만 남는다
옷장을 열다 보았다
어머니 수의 한 벌
작산 사름이 울엄시냐* 눈시울 붉어진다
삼베같이 써넝한** 어머니의 시든 손
상처는 미래에서 온다
그래서 사과는 붉다
---
* 작산 사름이 울엄시냐 : 작산 사름은 어른이라는 말. 다 큰 사람이 어른답지 못하게 울고 있느냐
** 써넝한 : 차가운.
♧ 생강나무
부적처럼
생강나무 꽃이 핀다
봄날은 밤이 맵다
식물은 사람을 이해한다
꿈에 아버지가
꽃그늘에 앉아계셨다
꿈 밖의 어머니를 불러
아버지와 흰 막걸리를 마셨다
흐린 글씨체처럼
나는 취기가 돌았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결명주사로 이름을 적으면
내 눈에 생강나무 꽃이 핀다
생강나무 꽃에 발자국 같은 게 남았다
* 서안나 시집 『애월』 (여우난골, 2023)에서
'아름다운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순남 시집 '내 생애 아름다운 인연'의 시(9) (1) | 2024.04.03 |
---|---|
문경수 시집 '틀림없는 내가 될 때까지'의 시(7) (0) | 2024.04.02 |
월간 '우리詩' 3월호의 시(5) (1) | 2024.03.31 |
장이지 시집 '편지의 시대'의 시(7) (0) | 2024.03.30 |
월간 '우리詩' 3월호의 시(4) (0) | 2024.03.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