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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서안나 시집 '애월'의 시(8)

by 김창집1 2024. 4. 1.

 

 

애월, 갯괴불주머니

 

 

바다를 오래 쳐다보면

내가 무서워진다

나를 이해한다는 당신이 무섭다

 

애월에서 나는 파란만장을 생각한다

봄밤은 상심으로 가득하고

목 없는 부처처럼 우리는 이미 파탄이다

 

해변은 누가 묶어둔 코뿔소일까

자꾸 달아나는 갯괴불주머니

 

당신이 두고 간 질문

슬픔에 가깝다

 

 

 

 

작산 사름

 

 

멍들거나 흠집 난 사과는 썩으려는 사과

칼로 깎으면 아플 부분만 남는다

 

옷장을 열다 보았다

어머니 수의 한 벌

 

작산 사름이 울엄시냐* 눈시울 붉어진다

삼베같이 써넝한** 어머니의 시든 손

 

상처는 미래에서 온다

그래서 사과는 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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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산 사름이 울엄시냐 : 작산 사름은 어른이라는 말. 다 큰 사람이 어른답지 못하게 울고 있느냐

** 써넝한 : 차가운.

 

 

 

 

생강나무

 

 

부적처럼

생강나무 꽃이 핀다

 

봄날은 밤이 맵다

식물은 사람을 이해한다

 

꿈에 아버지가

꽃그늘에 앉아계셨다

꿈 밖의 어머니를 불러

아버지와 흰 막걸리를 마셨다

 

흐린 글씨체처럼

나는 취기가 돌았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결명주사로 이름을 적으면

내 눈에 생강나무 꽃이 핀다

생강나무 꽃에 발자국 같은 게 남았다

 

 

                     * 서안나 시집 애월(여우난골, 2023)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