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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임채성 시조집 '메께라'의 시조(1)

by 김창집1 2024. 4. 5.

 

 

시인의 말

 

 

 

알맹이는

어디 갔나?

껍데기만

무성한 봄날

 

애기동백

목을 떨군

올레, 올레

톺아가며

 

씻김의

해원상생굿

그 축문을

외고 싶다

 

 

                                            2024년 봄

 

                                                  임채성

    

 

 

 

제주 동백

 

 

바람에 목을 꺾은 뭇 생령이 나뒹군다

 

해마다 기억상실증 도지는 봄 앞에서

 

상기된 얼굴을 묻고

투신하는 붉은 꽃들

 

 

죽어서 할 참회라면 살아서 진혼하라

 

산과 들 다 태우던 불놀이를 멈춘 섬이

 

지노귀 축문을 외며

꽃상여를 메고 간다

 

 

 

 

올레를 걷다

 

 

걸음발이 무직하다

순례인 듯 답사인 듯

 

무너진 산담 앞의 풀꽃들과 눈 맞추며

43, 때론 34조로 돞아가는 제주 올레

 

총탄 맞은 자국일까

창칼에 찔린 상처일까

 

온몸에 흉터를 새긴 현무암 검은 돌담

섬 휩쓴 거센 불길에 숯검정이 됐나보다

 

오름을 감아 돌다

바다로 틀어진 길

 

바람이 봄을 밀고 골목 안을 배회할 때

팽나무 굽은 가지가 살풀이춤 추고 있다

 

 

 

 

사월의 환

 

 

한라산 털진달래 핏빛 뚝뚝 떨구는 날

삼보일배 걸음으로 사월 올레 걸어본다

조랑말 간세다리가

게름 한껏 피우는 길

 

돌하르방 퉁방울눈 이슬에 젖어 있다

성산포 터진목에서 북촌 너븐숭이까지

밟혀도 일어선 풀들 증언하듯 도열하고

 

잊어라, 잊어라 해도 어제처럼 생생한 밤

오름 아래 마을들이 달집처럼 태워지고

산에 간 이웃삼촌은 거적에 싸여 돌아왔다

 

백발의 삘기꽃이 산담 앞을 지키고 선

통점의 언저리를 숨죽이며 더듬을 때

봉인된 기억의 빗장

시나브로 풀어진다

 

 

                                * 임채성 시조집 메께라(고요아침, 2024)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