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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임채성 시조집 '메께라'의 시조(7)

by 김창집1 2024. 5. 9.

 

 

한모살*

 

 

 누구는 당캐라 하고

 누군 또 당포라던

 

 넓디넓은 백사장에 화약 연기 자욱한 날

 

 산 넘은 겨울바람은

 칼끝보다 매서웠네

 

 한라산 세명주할망 눈 감지 못한 바다

 표선리와 가시리에서 토산리 의귀리 한남리 수망리 세화리 성읍리까지 매오름과 달산봉을 타고 내린 눈물들이 웃말개미 천미천 지나 남초곶 해신당으로 휘뚜루마뚜루 흘러들어 포말로 흩어질 때

 조간대 갯것들에는 피 냄새가 묻어있네

 

 상군해녀 물질로도

 건지지 못한 혼불

 

 부러진 죽창 위에 지노귀굿 기를 달면

   

 까치놀 서녘 하늘이

 제사상을 진설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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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4.3 당시 표선면과 남원면 일대 주민들을 총살하던 표선리 백사장.

 

 

 

 

돈내코

 

 

원앙폭포 앞에 서면

가슴부터 젖어든다

 

여울에선 옛사람도 발목이 꺾인다고

난대림 원시의 숲이 한 발 뒤로 물러선다

 

산돼지와 산사람만 몰래 찾던 계곡에는

꽃잠 꾸는 눈빛들이 무지개를 타고 앉아

카메라 뷰파인더 창에 긴 하루를 가둔다

 

풀리지 않는 봉인처럼

해가 들지 않는 숲속

 

발가벗겨 끌려다간 첫날밤을 진혼하듯

비췻빛 원앙의 날개 물소리로 파닥인다

 

 

 

 

소남머리

 

 

천 년을 하루같이 울면

네 눈물이 마를까?

 

한라의 가슴팍을 하염없이 타고 내려

막다른 해안 절벽 에 절명시를 쓰는 이여

 

그날의 포승 같은 뿌리 하나 끊지 못해

정방폭포 벼랑 끝에 뿌리박은 솔 한 그루

바람의 비명소리를 가지마다 길고 있다

 

서복徐福*은 죽어서도 전설로 부활하고

살아 있는 아픔들은 바다로만 밀리는데

 

불로초, 불로초 같은

물소리는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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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시황의 명에 따라 불로초를 구하려 왔다는 중국 진나라 때의 방사(方士). 서불(徐市)이라고도 함. 정방폭포 위쪽 소남머리 옆에 서복기념관이 있다.

 

 

            *임채성 시조집 메께라(고요아침, 2024)에서